hoey.review()
2013년 12월 8일 일요일
Gravity
우주가 나오는 영화는 사실 정말 흔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주가 나오는 대부분의 SF 영화들은 '상상력을 발휘하기 위한 개념'일 뿐이다. 심지어 맨 몸으로 우주에서 대기권에 뛰어내리는 영화(락다운)도 있을 정도다.
Gravity의 이야기는 정말 단순하다. 우주에서 작업 중인 우주비행사가, 사고를 당하면서 살아남아 지구로 돌아가기 위한 투쟁을 그리고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SF영화면 5분이면 풀어낼만한 이야기다. 하지만 Gravity는 이야기보다는 '우주' 그 자체에 집중하며 실제 우주에서 일어날 법한 일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다.
대부분의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당연시 여길 '중력'. '중력'이 없는 우주의 공포는 인간이 광할한 우주 속에서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지 잘 보여준다.
다양하고 많은 죽음이 있지만, 죽음의 순간에 누군가가 곁에 없다면, 내 존재의 흔적 자체가 없어진다고 생각한다면? 영화 속 주인공이 우주를 완전히 홀로 남아 표류하면 느꼈을 죽음에 대한 공포는 정말 엄청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주에 가고 싶다. 무섭고 정말 무섭겠지만, 깊은 세상 속에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 다시금 확인하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드는 영화다.
2013년 10월 1일 화요일
관상
139분
한재림
파도를 만드는 것은 바람인데 말이오...
누군가 미래를 알려준다면 어떨까? 뭔가 불안하면서도 누구나 궁금한 것이 자신의 미래가 아닐까? 내가 바라는 바가 잘 이뤄질 것인지, 내가 가까이 하는 사람이 날 등지는 날이 오지는 않을 것인지, 우리는 실제로 알지 못하는 것이 훨씬 많다.
실화를 각색한 픽션으로, 이 영화는 '관상'을 통해 미래를 거의 정확히 맞추는 능력을 가진 주인공이 역사적 사건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일개 '관상쟁이'에 불과했던 주인공이, '운명을 읽는 자'가 되면서 권력자들과 함께 하며 나라의 정세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영화의 전체적인 평으로는, "전형적인 웰메이드 사극"이다. 뭔과 사극에서 봤었던 것 같은 전개와 감동, 재미가 골고루 잘 녹아들어 있다. 어찌보면 얼마 전 대흥행한, '광해'와도 전체적으로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내가 좋았던 것은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김내경의 대사다.
"난 사람의 얼굴을 봤을 뿐 시대의 모습은 보지 못했소.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만 본 격이지. 바람을 보아야 하는데… 파도를 만드는 건 바람인데 말이오."
'운명을 읽는 자'가 모든 걸 잃고 내뱉은 이 대사는 강렬한 임펙트를 주었다. 운명을 읽는 능력을 갖고 있는 주인공 역시 인간이고, 순간 순간의 눈 앞에 욕망에 집착했다는 것이다.
추석 연휴 즈음 개봉해서 볼 사람은 다 봤겠지만, 현실에 지쳐 괜찮은 옛날 이야기를 한 번 보고 싶다면 한 번쯤 봐도 좋을 것 같다.
2013년 9월 20일 금요일
학문의 즐거움
히로나카 헤이스케 저, 방승양 역
246쪽
소심심고 素心深考
강의 중에 교수님께서 일본의 한 수학자 이야기를 해주면서 그의 자서전을 꼭 한 번 읽어보라고 추천해주셨다. 나는 똑똑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가에 대해 관심이 많은 편인데, '학문의 즐거움'이라는 제목과 얇다는 사실에 이끌려 읽게 되었다.
저자인 히로나카 헤이스케라는 수학자는 '노벨 수학상'이라 불리는(실제로 노벨 수학상이 없기 때문에) 필드 상을 수상한 수학자다. 기하대수학이라는 수학 분야의 난제인 '특이점 해소'에 관한 연구로 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노벨 수학상이라 불리는 필드 상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머리가 좋다.', '천재다.'라 할 수 있을 법하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많이 부족한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책에서 진술된 그의 성장과정을 보면 우리가 소위 '천재'라 부르는 사람들처럼 특출났던 점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잘 생각해보면, '천재'란, '들인 시간에 비해 이해하는 효율이 좋은 사람'일 것이다. 머리가 좋다고 해서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저자는 이점을 강조한다. 결국엔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노력하기 위해선, need가 아닌 want의 일을 해야한다는 말이 와 닿았다. 그의 정의에서 need와 want의 차이는, need가 외부적인 요인에 따른 필요라면, want는 자기 자신 내부의 요인에 따른 필요다. 즉, 마음이 시키는 일을 해야 끊임없이 노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배움을 강조한다. 배우는 것은 어차피 까먹는 것이 아니냐..라는 예상된 질문에, '까먹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저장된 기억을 찾아 내는 법을 까먹는 것이다.'라고 답한다. 배워둔 것은 '지혜'의 형태로 남아서, 필요할 때 조금만 찾아보면 다시 써먹을 수 있다는 그의 말이 다양한 프로그래밍 경험을 추구하는 내게 무척 와 닿았다.
한 수학자의 인생 경험을 통해 얻은 좋은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가장 좋은 이야기는 소심심고였다. 풀어서 말하자면, '소박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는 자세'다.
내 경험도 그렇고, 슬럼프에 빠지는 많은 이들이 '소심심고'를 잊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오르면 자신의 생각이나 가치관, 아이디어를 고집하게 되고, 문제를 큰 흐름에서 파악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가 수학자가 되기로 한 것은 대학교 3학년 때 였다고 한다. 그는 그만큼 평범했지만, 인류에 길이 남을 연구성과를 만들어 냈다.
'나는 특별한 존재다.'라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우리 개개인이 '유일하다는 의미'에서 특별하다. 하지만 '인간'으로서는 수 많은 사람들 속에 하나일 뿐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 하는 자세를 가져야할 것이다. 그것만이 스스로를 더 특별하게 만들 수 있다.
2013년 9월 19일 목요일
월드워 Z
마크 포스터(Marc Forster)
115분
좀비영화의 집대성.
수 많은 호평을 들었으나 기회가 되지 않아 보지 않고 지나쳤던 영화. VOD가 릴리즈되자마자 보았다.
개인적으로 좀비물은 꽤나 좋아한다. 재난영화에서 사회 붕괴 현상을 묘사하는 것을 꽤나 좋아하는 편인데, 좀비물은 재난영화의 그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판타지적인 요소까지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관점에서 보면 월드워 Z에서 새로운 것은 별로 찾아보기 어렵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장면 연출이 계속이어진다.
하지만 식상하지 않다. 간결하게 잘 정돈되어 있다. 꼭 필요한 장면들을 통해 각각의 사건이 주인공의 사고와 심리 상태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이를 통해 '좀비'라는 극단적으로 판타지적인 요소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내일 당장 현실 세계에 좀비가 나타난다해도 이상하지 않을 법한 느낌까지 갖게 한다.
좀비물은 B급, 잘되도 A-급 정도로 나오는 것이 많은데, S급 영화가 좀비를 다루면 어떻게 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랄까?
앞서 언급한, 사회 붕괴 현상에 관한 메시지 역시 뚜렷하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인간의 이기심이 싹트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서로를 도우려는 사람들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 더 나아가 인류를 지키기 위해 미약한 힘이라도 보태려는 사람들이 있다. '좀비'를 통해 역설적으로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듯 하다.
호평에는 호평의 이유가 있다. 아직 보지 않았다면 추석연휴를 빌어 좀비의 세계 속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2013년 9월 11일 수요일
13층
조세프 루스낵(Josef Rusnak)
98분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첫 장면은 철학자 데카르트가 남긴 유명한 한 마디로 시작한다.
"I think, therefore I am"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 한 마디를 철학적으로 엄밀하게 따져 보는 것은 골치 아플 수도 있는 일이니, 직관에 맡겨 생각해볼까 한다.
일단 첫 인상은 되도 않는 소리같다. '생각하니까 존재한다니?' 바보 같이 들릴 수도 있겠지만, 철학자인 데카르트에게는 '존재함'(~이 있다)이 가장 큰 문제였던 것이다. 그는 '있다'가 뭔지 스스로 묻고 그것에 답한 것이다. 보통, 일상 생활을 하는데에 있어서 '있다'는 너무나도 당연해서 고민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있으면 있는거고 없으면 없는 것'이지 않은가?
'있다'가 뭔지 왜 물어야 했을까?
영화에 메시지는 여기에 '있다.'. 우리는 '있다'는 것에 의구심을 가질 필요가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 속에서는 '있다'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되는 세상을 만들어주고, '있다'가 뭔지에 대해 묻는다.
내가 흥미롭게 본 것은 '차원'이다. '차원'을 벗어나지 않으면, 우리가 정말 '있다'라고 말할 수 없다. 마지막 장면의 세계 역시, 정말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단지 그렇다고 생각하고 믿을 뿐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를 내 식대로 재해석해보면,
'있다'는 상대적(차원 의존적)이다.
단지, '있다'고 생각하면 있는 것이다. 영화 속 처럼, '차원'을 뛰어 넘을 수 없는 한에서 말이다. '차원'을 영영 뛰어 넘을 수 없을지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보기로.
2013년 9월 7일 토요일
엘리시움
닐 블롬캠프(Neill Blomkamp)
109분
문명의 발전, 이타성의 퇴화.
먼저, 엘리시움의 뜻이 궁금해졌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으며 한 번쯤 봤던 말인 것 같긴 한데, 명확하지 않았다.
재밌는 것은 '선량한 사람들', '지상의 행복'과 같은 뭔가 고귀한 뜻을 담고 있다는 거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엘리시움에 사는 사람들은 전혀 선량하거나 고귀하지 않다. 보통은 '기득권 층에 속해 있지만 깨어있는 주인공 측근'같은 사람들이 한 명 쯤 나오기 마련이지만, 여기서는 얄짤없다. '엘리시움'에 사는 사람들은 오로지 자신의 안락함, 안전에만 관심이 있다. 그들은 충분한 여력이 있음에도, '타인의 불행에 대해 무관심하다.'
영화 속에 '사회적 문제'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담으려는 노력에 대해 생각해봤다. '우리와 닮지 않은 세계를 그려 내면 안될까?' 내가 내린 결론은, '우리와 닮지 않은 세계엔 공감이 없을 거고, 아무도 재밌어 하지 않을거다..'라는 거다.
얼마 전에 즐겁게 봤던 '설국열차'와 '계층 간의 갈등'을 다룬 소재의 측면에서 무척 닮아있다. 미묘하게 다른 점은, '설국열차'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더 나아가, '갈등'을 더 높은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면, 이 영화는 '기득권 층이 조금만 더 인간적일 순 없을까?'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 하다.
엘리시움은 이를 위해 '의료기술'이라는 소재를 사용해서 정당화하려는 시도를 했다. 어떤 병이든 치료할 수 있는 기술이 있음에도, 그런 기술이, '빈 집'에서 사용되고 있지 않은 채로 있음에도, 어떤 이들은 이 기술을 사용하지 못해 죽음을 맞이하고 고통을 겪는다.
어렵게 생각하려 들지 않더라도. SF 영화적 측면의 근 미래 상을 무척 잘 그려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첨단 과학 기술은 그럴 듯하며, 새롭고 흥미로워서 흥미를 더 자극했고, 즐겁게 볼 수 있었다.
언젠가 친구와 진정한 대중성을 얻게 되는 영화는, '블록버스터의 외형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적당히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다.'라고 결론을 내린적이 있는데, 엘리시움 정확이 들어 맞는, 좋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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