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8일 일요일

재미있는 통계 이야기


Gravity



우주가 나오는 영화는 사실 정말 흔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주가 나오는 대부분의 SF 영화들은 '상상력을 발휘하기 위한 개념'일 뿐이다. 심지어 맨 몸으로 우주에서 대기권에 뛰어내리는 영화(락다운)도 있을 정도다.

Gravity의 이야기는 정말 단순하다. 우주에서 작업 중인 우주비행사가, 사고를 당하면서 살아남아 지구로 돌아가기 위한 투쟁을 그리고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SF영화면 5분이면 풀어낼만한 이야기다. 하지만 Gravity는 이야기보다는 '우주' 그 자체에 집중하며 실제 우주에서 일어날 법한 일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다.

대부분의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당연시 여길 '중력'. '중력'이 없는 우주의 공포는 인간이 광할한 우주 속에서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지 잘 보여준다.

다양하고 많은 죽음이 있지만, 죽음의 순간에 누군가가 곁에 없다면, 내 존재의 흔적 자체가 없어진다고 생각한다면? 영화 속 주인공이 우주를 완전히 홀로 남아 표류하면 느꼈을 죽음에 대한 공포는 정말 엄청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주에 가고 싶다. 무섭고 정말 무섭겠지만, 깊은 세상 속에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 다시금 확인하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드는 영화다.

2013년 10월 1일 화요일

관상



139분
한재림

파도를 만드는 것은 바람인데 말이오...


누군가 미래를 알려준다면 어떨까? 뭔가 불안하면서도 누구나 궁금한 것이 자신의 미래가 아닐까? 내가 바라는 바가 잘 이뤄질 것인지, 내가 가까이 하는 사람이 날 등지는 날이 오지는 않을 것인지, 우리는 실제로 알지 못하는 것이 훨씬 많다.

실화를 각색한 픽션으로, 이 영화는 '관상'을 통해 미래를 거의 정확히 맞추는 능력을 가진 주인공이 역사적 사건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일개 '관상쟁이'에 불과했던 주인공이, '운명을 읽는 자'가 되면서 권력자들과 함께 하며 나라의 정세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영화의 전체적인 평으로는, "전형적인 웰메이드 사극"이다. 뭔과 사극에서 봤었던 것 같은 전개와 감동, 재미가 골고루 잘 녹아들어 있다. 어찌보면 얼마 전 대흥행한, '광해'와도 전체적으로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내가 좋았던 것은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김내경의 대사다.

"난 사람의 얼굴을 봤을 뿐 시대의 모습은 보지 못했소.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만 본 격이지. 바람을 보아야 하는데… 파도를 만드는 건 바람인데 말이오."

'운명을 읽는 자'가 모든 걸 잃고 내뱉은 이 대사는 강렬한 임펙트를 주었다. 운명을 읽는 능력을 갖고 있는 주인공 역시 인간이고, 순간 순간의 눈 앞에 욕망에 집착했다는 것이다.

추석 연휴 즈음 개봉해서 볼 사람은 다 봤겠지만, 현실에 지쳐 괜찮은 옛날 이야기를 한 번 보고 싶다면 한 번쯤 봐도 좋을 것 같다.

2013년 9월 20일 금요일

학문의 즐거움



히로나카 헤이스케 저, 방승양 역
246쪽

소심심고 


강의 중에 교수님께서 일본의 한 수학자 이야기를 해주면서 그의 자서전을 꼭 한 번 읽어보라고 추천해주셨다. 나는 똑똑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가에 대해 관심이 많은 편인데, '학문의 즐거움'이라는 제목과 얇다는 사실에 이끌려 읽게 되었다. 

저자인 히로나카 헤이스케라는 수학자는 '노벨 수학상'이라 불리는(실제로 노벨 수학상이 없기 때문에) 필드 상을 수상한 수학자다. 기하대수학이라는 수학 분야의 난제인 '특이점 해소'에 관한 연구로 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노벨 수학상이라 불리는 필드 상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머리가 좋다.', '천재다.'라 할 수 있을 법하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많이 부족한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책에서 진술된 그의 성장과정을 보면 우리가 소위 '천재'라 부르는 사람들처럼 특출났던 점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잘 생각해보면, '천재'란, '들인 시간에 비해 이해하는 효율이 좋은 사람'일 것이다. 머리가 좋다고 해서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저자는 이점을 강조한다. 결국엔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노력하기 위해선, need가 아닌 want의 일을 해야한다는 말이 와 닿았다. 그의 정의에서 need와 want의 차이는, need가 외부적인 요인에 따른 필요라면, want는 자기 자신 내부의 요인에 따른 필요다. 즉, 마음이 시키는 일을 해야 끊임없이 노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배움을 강조한다. 배우는 것은 어차피 까먹는 것이 아니냐..라는 예상된 질문에, '까먹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저장된 기억을 찾아 내는 법을 까먹는 것이다.'라고 답한다. 배워둔 것은 '지혜'의 형태로 남아서, 필요할 때 조금만 찾아보면 다시 써먹을 수 있다는 그의 말이 다양한 프로그래밍 경험을 추구하는 내게 무척 와 닿았다.

한 수학자의 인생 경험을 통해 얻은 좋은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가장 좋은 이야기는 소심심고였다. 풀어서 말하자면, '소박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는 자세'다.

내 경험도 그렇고, 슬럼프에 빠지는 많은 이들이 '소심심고'를 잊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오르면 자신의 생각이나 가치관, 아이디어를 고집하게 되고, 문제를 큰 흐름에서 파악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가 수학자가 되기로 한 것은 대학교 3학년 때 였다고 한다. 그는 그만큼 평범했지만, 인류에 길이 남을 연구성과를 만들어 냈다. 

'나는 특별한 존재다.'라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우리 개개인이 '유일하다는 의미'에서 특별하다. 하지만 '인간'으로서는 수 많은 사람들 속에 하나일 뿐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 하는 자세를 가져야할 것이다. 그것만이 스스로를 더 특별하게 만들 수 있다.

2013년 9월 19일 목요일

월드워 Z


마크 포스터(Marc Forster)
115분

좀비영화의 집대성.


수 많은 호평을 들었으나 기회가 되지 않아 보지 않고 지나쳤던 영화. VOD가 릴리즈되자마자 보았다.

개인적으로 좀비물은 꽤나 좋아한다. 재난영화에서 사회 붕괴 현상을 묘사하는 것을 꽤나 좋아하는 편인데, 좀비물은 재난영화의 그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판타지적인 요소까지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관점에서 보면 월드워 Z에서 새로운 것은 별로 찾아보기 어렵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장면 연출이 계속이어진다.

하지만 식상하지 않다. 간결하게 잘 정돈되어 있다. 꼭 필요한 장면들을 통해 각각의 사건이 주인공의 사고와 심리 상태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이를 통해 '좀비'라는 극단적으로 판타지적인 요소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내일 당장 현실 세계에 좀비가 나타난다해도 이상하지 않을 법한 느낌까지 갖게 한다.

좀비물은  B급, 잘되도 A-급 정도로 나오는 것이 많은데, S급 영화가 좀비를 다루면 어떻게 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랄까?

앞서 언급한, 사회 붕괴 현상에 관한 메시지 역시 뚜렷하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인간의 이기심이 싹트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서로를 도우려는 사람들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 더 나아가 인류를 지키기 위해 미약한 힘이라도 보태려는 사람들이 있다. '좀비'를 통해 역설적으로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듯 하다.

호평에는 호평의 이유가 있다. 아직 보지 않았다면 추석연휴를 빌어 좀비의 세계 속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2013년 9월 11일 수요일

13층



조세프 루스낵(Josef Rusnak)
98분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첫 장면은 철학자 데카르트가 남긴 유명한 한 마디로 시작한다. 

"I think, therefore I am"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 한 마디를 철학적으로 엄밀하게 따져 보는 것은 골치 아플 수도 있는 일이니, 직관에 맡겨 생각해볼까 한다.

일단 첫 인상은 되도 않는 소리같다. '생각하니까 존재한다니?' 바보 같이 들릴 수도 있겠지만, 철학자인 데카르트에게는 '존재함'(~이 있다)이 가장 큰 문제였던 것이다. 그는 '있다'가 뭔지 스스로 묻고 그것에 답한 것이다. 보통, 일상 생활을 하는데에 있어서 '있다'는 너무나도 당연해서 고민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있으면 있는거고 없으면 없는 것'이지 않은가?

'있다'가 뭔지 왜 물어야 했을까?

영화에 메시지는 여기에 '있다.'. 우리는 '있다'는 것에 의구심을 가질 필요가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 속에서는 '있다'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되는 세상을 만들어주고, '있다'가 뭔지에 대해 묻는다.

내가 흥미롭게 본 것은 '차원'이다. '차원'을 벗어나지 않으면, 우리가 정말 '있다'라고 말할 수 없다. 마지막 장면의 세계 역시, 정말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단지 그렇다고 생각하고 믿을 뿐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를 내 식대로 재해석해보면,


'있다'는 상대적(차원 의존적)이다.


단지, '있다'고 생각하면 있는 것이다. 영화 속 처럼, '차원'을 뛰어 넘을 수 없는 한에서 말이다. '차원'을 영영 뛰어 넘을 수 없을지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보기로.

2013년 9월 7일 토요일

엘리시움


닐 블롬캠프(Neill Blomkamp)
109분

문명의 발전, 이타성의 퇴화.


District 9이라는 영화를 재미있게 봤던지라, 같은 감독의, 엘리시움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부터 엄청 기대하고 있었다. '사회적 계층화'라는 District 9과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과 더불어, '엘리시움'이라는, 지구 위에 떠 있는 가상의 공간이라는 소재는 흥미를 끌기 충분했다.

먼저, 엘리시움의 뜻이 궁금해졌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으며 한 번쯤 봤던 말인 것 같긴 한데, 명확하지 않았다.



재밌는 것은 '선량한 사람들', '지상의 행복'과 같은 뭔가 고귀한 뜻을 담고 있다는 거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엘리시움에 사는 사람들은 전혀 선량하거나 고귀하지 않다. 보통은 '기득권 층에 속해 있지만 깨어있는 주인공 측근'같은 사람들이 한 명 쯤 나오기 마련이지만, 여기서는 얄짤없다. '엘리시움'에 사는 사람들은 오로지 자신의 안락함, 안전에만 관심이 있다. 그들은 충분한 여력이 있음에도, '타인의 불행에 대해 무관심하다.'

영화 속에 '사회적 문제'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담으려는 노력에 대해 생각해봤다. '우리와 닮지 않은 세계를 그려 내면 안될까?' 내가 내린 결론은, '우리와 닮지 않은 세계엔 공감이 없을 거고, 아무도 재밌어 하지 않을거다..'라는 거다.


얼마 전에 즐겁게 봤던 '설국열차'와 '계층 간의 갈등'을 다룬 소재의 측면에서 무척 닮아있다. 미묘하게 다른 점은, '설국열차'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더 나아가, '갈등'을 더 높은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면, 이 영화는 '기득권 층이 조금만 더 인간적일 순 없을까?'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 하다.

엘리시움은 이를 위해 '의료기술'이라는 소재를 사용해서 정당화하려는 시도를 했다. 어떤 병이든 치료할 수 있는 기술이 있음에도, 그런 기술이, '빈 집'에서 사용되고 있지 않은 채로 있음에도, 어떤 이들은 이 기술을 사용하지 못해 죽음을 맞이하고 고통을 겪는다.

어렵게 생각하려 들지 않더라도. SF 영화적 측면의 근 미래 상을 무척 잘 그려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첨단 과학 기술은 그럴 듯하며, 새롭고 흥미로워서 흥미를 더 자극했고, 즐겁게 볼 수 있었다.

언젠가 친구와 진정한 대중성을 얻게 되는 영화는, '블록버스터의 외형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적당히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다.'라고 결론을 내린적이 있는데, 엘리시움 정확이 들어 맞는, 좋은 영화다.

2013년 9월 1일 일요일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저
176쪽

시간, 기억, 삶



책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자기 취향에 빠져 버리는 수가 있다. 나의 경우에는 '소설'을 은근히 선호하지 않게 되었다. 간간히 보는 소설도 해외에서 정말 유명하다며 널리 알려진 소설들이라, 특히나 '한국 소설'에 대한 경험은 거의 없다.

편식하지 않아야 건강하다고들 하지 않던가. 건강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한국 소설을 한 편 읽어보기로 했다. 그리하여 고르게 된 것이 이 책이다. 흥미를 끌만한 제목과, 가볍게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얇은 책이 선택에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연쇄 살인범'이 늙어서 '치매'에 걸리며, '기억'하려고 발버둥치며 남긴 '메모'들이 이 이야기의 진행방식이다. '메모'인 짧은 단락들은 함축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으면서도 놀랍도록 흡인력있게 읽혔다. 이야기의 결말은 순식간에 그동안 구축해놓았던 세계를 뒤집어 놓고, 강렬한 메시지를 남기며 끝난다. '시간', '기억', '삶'이 복잡하게 얽혀 우리네 인생에 대해 고민에 잠기게 한다.

한 권의 책과 만나는 것은 흡사 '인연'을 맺는 것과 흡사한 듯 하다. 우연히 만난 이 책은 내 인생에 한 줄의 풍요로움을 더해주었다. 이야기 자체도 무척 재밌으면서도 깊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팔방미인 같은 책이다.

살인자의 기억법이 궁금하지 않은가?

2013년 8월 30일 금요일

잡스(Jobs)


조슈아 마이클 스턴(Joshua Michael Stern)
127분

위대함을 손에 쥐다.


The Social Network를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꼽는 나로서, 이번에 개봉하는 '잡스' 또한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잘 생각해보면 '잡스'에 대한 영상은 꽤 많이 본 편이지만, 그가 애플에서 어떻게 쫒겨 나게 되었는지, 애플이 어떤 행보를 밟고 있었던 회산지는 전혀 모르던 상태라 스토리가 기대되었다. 사실 국내에서의 애플컴퓨터는, 일부 디자인 업계를 제외하고는 '아이폰' 대중화 전까지는 '호환 안되는 불편한 컴퓨터'라는 인식이 아니었던가.

소셜 네트워크 때도 그랬지만, '현실과 굉장히 다를 수 있음'을 인지하고 봤다. 확실히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이야기의 감동을 주기 위해 '미화'된 감이 없지 않았다. 사실 엄밀하게 따지면 이런류의 영화들은 다 '사극'이지 않은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백하게 담아내려 했다면 다큐멘터리가 됐을 것이다.(감명 깊게 본, Story of Mojang이 떠오른다.)

전체적인 '스티브 잡스'라는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사람의 행보를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즐겁게 볼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사후에도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끊없이 영감을 불어 넣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죽어서 까지 혁신을 이뤄내고 있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그가 추구하던 '위대함'을 얻어냈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



버드런드 러셀 저, 송은경 역
270쪽

게으름과 행복, 그리고 사회.


이전에 정말 즐겁게 읽었던 만화(로지코믹스)에서 철학자 러셀의 삶을 엿보았기에, 이 책의 저자인 러셀은 내게 더 친숙하게 느껴졌다. 그의 에세이를 모아 놓은 책의 제목이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라니, 흥미가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이야기를 할지 너무 궁금했다. 내가 기존에 러셀에 대한 이미지를 '논리학자'의 이미지로만 강하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물론 앞서 언급한 로지코믹스의 영향이다.) 그가 썼다는 모순적일 수도 있는 책 제목이 끌릴 수 밖에.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처음엔 조금 실망했었다. 내용자체가 감명 깊지 못하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다. 뭔가 '역설'에서 나온 재미있는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책의 내용은 그것과는 조금 동 떨어진, 정치, 사회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러셀이라는 학자의 중, 노년기의 삶을 조금만 더 넓게 잡고 있었다면 잘못된 기대를 하지 않았을거다.

기대와는 다른 내용이었지만, 내용 자체는 흥미로운 것들이 많았다. '논리학자'가 '사회'에 관심을 갖게 된 '인생의 변화'가 흥미로웠고, 그 논리를 바탕으로 상상하고 지향해야할 사회상을 제시해주는 것이 재밌었다. 

이 책에서 전체적으로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상적 사회주의'에 관한 내용이다. 이 책은 다양한 관점에서 이상적 사회주의를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중요한 부분은 막스의 사회주의와 그를 배경으로 한 다양한 사상들의 한계점을 이야기하면서 제대로 된 '사회주의'란  이런 것이다..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일 것이다. 그는 '논리학자'였던 배경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논거로 이상적인 사회주의가 실현되었을 때 인류가 얼마나 행복해질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다소 아쉬운 것은 후반부에서, 사회적 상황이 맞지 않다면, '일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면 '일자리가 없어도 돈을 줘야한다.'와 같은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려운 제안까지 하고 있다는 것이다. 철학자들은 대개 이상을 추구하는 경향을 갖게 되는 것 같은데, 조금만 자신의 이상에 심취하면 냉철함을 잃고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 읽은 '피로 사회'와 굉장히 많은 유비가 된다. 한 세기의 차이를 두고 각자의 시대 사회 상에 대해 비슷한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원제가 'In Praise of Idleness'다. 책을 다 읽고 제목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다소 역설적이지만, 그가 주장하는 이상적 사회에서 산다면, 우리는 게으를 수 있다. 더 놀고, 더 먹고 마실 수 있다. '게으름'이 그 자체로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게 된 현대 사회지만, 어휘의 뉘앙스가 사회 분위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든다.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

2013년 8월 24일 토요일

숨바꼭질


2013
107분

공포: 구체적이지 않은 실체.


기대와 가장 친한 친구는 실망이라고 했던가. 예상치 못한 호평으로 큰 기대를 갖고 본 영화다. 이제는 경험적으로 기대를 많이 갖고 보면 만족도가 떨어지게 된다는 것을 안다. 이 영화도 기대를 더 적게 가졌다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지만(이런 맥략에선 더 테러 라이브가 참 좋았다.), 기대에는 약간 못 미치는 정도랄까. 기대를 갖게 만든 상황을 탓하고 나면, 꽤 재밌는 영화였다.

스릴러 영화의 특성 상, 상황의 개연성을 중요시하는 관점을 비난하고 싶지 않지만, 이 영화의 강점은 훌륭한 개연성에 있는 것이 아니다. '커다란 헬멧으로 얼굴을 결코 드러내지 않는 범인'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갑자기 나타나'를 '이유 모를 폭력을 가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어디선가 공포의 핵심 요소로, '구체적이지 않은 실체'라고 언급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이 영화는 그 핵심을 잘 파고 들었기 때문에, 어떤 공포 영화보다 무섭게 느껴진다.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가 존재한다. 자신의 강점을 잘 파고 드는 것도 좋은 가치일 수 있고, 다양한 요소를 복합적으로 잘 버무리는 것도 좋은 가치일 수 있다. 이 영화는 전자의 가치에서 훌륭한 영화다.

2013년 8월 12일 월요일

피로사회


한병철 저, 김태환 역
128쪽

긍정성의 부정성.


후배의 추천으로 우연히 읽게 된 이 책은 '한국인 철학자의 독일 베스트 셀러'라는 매우 특이한 꼬리표를 달고 있다. 학부 때 '금속공학'을 전공한 저자의 이력도 특이하다. 그에게 금속 공학이 적성에 맞았든 아니건 간에, 그의 철학이 이슈를 불러왔다는 것 자체가 그가 철학을 공부한 것이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대변해준다.

그의 철학에는 그의 독특한 이력이 살아있다. 인간을 이해하는데에 '질병'의 메커니즘을 유비로 사용할 수 있는 철학자가 또 있을까? 그는 현대 인간의 문제가 전염성 질병에서 경색성 질병으로 바뀌었다고 이야기한다. 외부의 억압, 타자의 인간성 침해와 같은 문제들이 심리적 문제를 야기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내부의,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억압과 착취가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 같은 새로운 문제가 사회적 제도의 발달에 따라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일이 없어졌다는 사실(면역체계가 형성된 것이다.)과 자본주의와 제한없는 자유에 따른 성과주의가 만연해지면서 발생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과거의 유명 철학자들의 이런 문제에 대한 해석을, '패러다임 전환'을 고려하지 못해 정확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자신의 새로운, '긍정성의 부정적 영향'의 패러다임으로 현대 인간 상을 읽어내고 있다.

패러다임이란, "그 시대에, 어떤 것을 설명하는데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참이라 여겨지는 이론"정도로 설명할 수 있다. '패러다임 전환'은 대부분 우리가 명확히 이해하기 힘든 어떤 것에 관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설명이 등장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 책에서의 이해 대상은 '인간 사회와 그 인간 상'이며, '복합적인 요소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인간 사회와 그 인간 상'이 바뀜에 따라, '인간을 이해하는' 패러다임도 끊임없이 바뀔 것이다. '현대인'인 나에게(그리고 수많은 독일 독자들에게도) 무척이나 잘 들어맞는다는 점이 저자의 '현대인 읽기'의 이론이 패러다임 전환을 불러올 것임을 느끼게 한다.

저자는 그의 철학에 따라 현대인의 각종 신경성 질환들, 이를테면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경계성성격장애, 소진증후군, 등의 원인을 '할 수 있다,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하라'는 식의 현대 사회의 경향성에서 읽어 내고 있다. 그리고는, '가끔은 게을러지기도 하고, 잠시 쉬어가는 것이 어떠냐..'라고 묻고 있는 듯 하다. '이상의 나'와 '현실의 나'에 대한 깊은 골을 생각하기 보단, '현실의 나'에 만족하고 '조금씩 나아지는 나'를 그려보는 하루하루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어떨까.

2013년 8월 10일 토요일

더 테러 라이브


2013
97분

상황 연출만으로 심장을 쫄깃쫄깃하게.



'테러'와 '범죄'는 이미 꽤나 진부한 소재가 되어버렸다고 생각한다. 범죄가 '라이브'로 생방송된다는 소재는 약간의 재미있는 비틀기 정도일 것이라 생각했다. 확 끌리진 않았는데, 막연한 궁금증에 끌려서 보게 되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아서 일까. 꽤나 좋았다. 특이한 것은, 영화가 대부분 전화 통화하는 장면이며, 주인공이 전화통화를 하는 스튜디오 이외에는 장소가 거의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영화가 내게 좋은 인상으로 남은 것은, 이러한 한 정된 상황을 만들어 놓고도 특유의 연출로 지루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상황 연출'만으로 관객의 심장을 쫄깃쫄깃하게 만든다. 시사점이 자연스럽게 부각되는 스토리도 '참신하다'라고 평가하기엔 조금 부족한 듯 느껴지지만 합격점을 줄 법하다.

범죄 영화지만 절묘한 범죄 수법과 같은 것도 없다. 범인을 추적하거나 하는 내용도 거의 설명되지 않는다. 이 영화는 범죄영화지만 범죄 영화의 틀에서 많은 것들이 결핍되어있다. 하지만 자신의 장점에 집중함으로써 괜찮은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설국열차와 개봉시기가 겹치는 바람에 빛을 바랜 감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개봉 얼마 안지나 200만을 돌파했다더라. 설국열차 정도의 대작 영화와 함께 개봉되지 않았더라면 영화관 1순위로 충분히 자리잡을 법한 영화라 생각하는데 조금 아쉽다.

영화 뿐만 아니라 어떤 일이든, 그 자체의 내용이 제일 중요하면서도, 상황적인 면까지 제대로 고려했을 때 확실한 성공이 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2013년 8월 6일 화요일

0137 설국열차, Transperceneige



지구에 빙하기가 찾아와 인류가 거의 절멸된 가운데, 무한히 순환하며 달리는 열차와, 그 승객들만이 살아남아 작은 세계를 이룬다..는 설정만으로도 내 흥미를 끌기 충분했다.

내용자체도 무척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열차 안의 세계를 흥미롭게 그려냈다는 점이 좋았다. 독특한 세계관이 어색하지 않게 구성되었을 때, 그 세계가 진짜처럼 느껴지고, 더 재미있게 볼 수 있기 마련이다.

내용자체는 얼마 전에 본, '헝거 게임'과 유사한 면이 무척이나 많았다. 계층 간의 갈등이나, 독특한 세계관과 소재, 상류층에 대한 묘사. 그런 계층화에 불만을 느낀, 빈민층의 주인공...

영화에서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료하다.


'불평등한 이 세계에서, 어떤 것을 지향해야하는가?'


영화 적 구성자체에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개인적으로만 느끼는 것인진 모르겠으나, 왜 '한국 감독'이 만든 '서양인 출연 영화'는 뭔가 어색한 분위기가 감도는걸까? 아무리 '서양 문화권'을 잘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특유의 '센스'는 그곳에서 오랜 기간 살면서 느끼지 않는 한 따라하기 힘든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측의 원작 만화는, 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우연히 서점에서 발견하여(마케팅의 힘이란..) 꽤 고가의 가격에도 불구하고 구입해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SnowPiercer라는 영화의 영어 제목과 유사하게 원작 만화의 제목인 Transperceneige는 Snow를 뜩하는 neige와 관통을 뜻하는 transpercement라는 말의 프랑스 합성어라고 한다.

만화에서는 원작 나름의 맛이 있다. 영화가 '기차 안의 세계'를 좀 더 '판타지적'이고 완전한 체계로 묘사했다면, 만화는 좀 더 '불안정한' 세계로 묘사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만화 속에서는 알고보니 '유일한 기차'도 아니고 정차하기도 한다.

주고자 하는 메시지 자체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영화의 내용이 더 매끄럽게 다듬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만화에는 종교, 정치와 같은 다양한 '사회문제'들 설국열차 세계 속에 다 담으려고 하다보니 조금은 난잡한 감이 없지 않다.


수 많은 사람들의 무한한 지성 속에서 피어나는, 이야기의 상상력에는 한계가 없구나..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재미있는 세계관 속에서 현실을 투영하여 읽어 내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다.

2013년 7월 29일 월요일

0136 문제는 무기력이다.


저자가 10년 동안 '무기력'증상을 경험했고, 이를 토대로 '무기력증이 무엇인지', '무기력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설명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 묘사하는 것들은 요즘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 내 성격, 성향과 무척 흡사했다. 스스로 '의욕과 동기에 불타오르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면까지, 저자는 나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고, 그것을 먼저 경험하고 극복했다.

끊어저 버린 '동기' 때문에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요즘이기에, '동기'와 관련된 영상이나 책을 꽤나 많이 읽었던 것 같다.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솔루션도 결과적으로는 TED에서 봤던 영상(다니엘 핑크:동기유발의 놀라운 과학과 같은 것들)과 매우 흡사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명확히 정의해야,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고, 동기가 시작된다. 스스로 자존감을 높히고, 원만한 관계 속에서 좀 더 정력적인 삶을 살 수 있다.. 등등의 것들..

사실 이 책에서 뾰족한 솔루션을 기대했다기 보다는 '공감'이라는 측면에서 재미있게 읽었다. 다른 사람도 나처럼 이런 문제로 힘들어하고, 의욕저하나 무기력증을 느끼게 되는구나. 나만 못나서 이러고 있는 것이 아니구나. 나도 용기를 내서 현 상황을 극복해나가야지..하는 용기 좀 얻게 된 것 같다.

의욕저하가 고민이라면, 한 번쯤 읽어볼만 할 것 같다.

2013년 7월 17일 수요일

0135 희랍인 조르바



조르바의 여운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싶어 영화를 찾아보게 되었다. 1964년에 나온, 무려 흑백 영화다. 흑백영화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적어도 내 기억 속에는 아무리 떠올려봐도 없더라)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음악이나 영상에서 아날로그 방식 특유의 느낌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이것이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이야기와 무척 잘 어울렸다. 요즘의 깔끔한 영상과 체계가 잡힌 O.S.T로는 절대 '조르바'의 분위기를 살릴 수 없을 것이다.

영화 자체는 영화의 서사적 구성에 따라 적절히 편집하긴 했지만, 소설의 내용을 충실하게 따라가고 있다. 스토리 자체의 새로움 보다는, '19-20세기 그리스'라는 친숙하지 않은 배경에 대한 상상력의 갈증을 채워 주어서 좋았다. 영화를 다 보고 후고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시각화되어 나타나는 이미지들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다가왔다는 것을 느꼈다. 영화가 원작의 분위기를 얼마나 충실하게 재현하려 노력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아쉽다면 아쉬운 부분은, 글쎄. 소설에서 표현하고 있는, 조르바 '신적인 광기'의 춤, 산투르 연주 등이 조금은 아쉽게 느껴졌다는 점이다. 영화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해야만 했던 것은 아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이 부담스럽다면, 그리고 한 번쯤은 '흑백 영화'의 진한 맛에 빠져 들고 싶다면, 이 희랍인 조르바를 추천하고 싶다.

2013년 7월 13일 토요일

0134 Mark of the Ninja



우연히 플레이 동영상을 보고는 해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임펙트를 받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Steam에서 다운받았다. 실제로 이런 저런 사정으로 초반부를 플레이 한 뒤 한 동안 안 하다가, 우연히 다시 잡고는 꽤나 몰입해서 했다. 특히나, 싱글 플레이 게임의 엔딩을 본 것은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다.

Mark of The Ninja는 2D 횡스크롤 방식의 잠입액션 게임이다. 2D 횡스크롤과 잠입액션을 접목시켰나는 점 만으로도 내 흥미를 끌기 충분했다. 대부분의 3D 잠입액션을 플레이해본 경험에 따르면, 게임의 특성상 길을 찾아 헤메거나 세밀한 플레이를 하기 힘들었다. Mark of The Ninja는 2D 횡스크롤 방식을 사용함으로써 길찾기는 좀 더 심플해지고, 조작성 또한 직관적이면서도, 잡입 액션 특유의 맛을 잘 살려 재밌게 플레이할 수 있었다. 닌자 잠입액션하면 떠오르는 '천주'를 2D로 그대로 옮겨 놓은 느낌이랄까.

내가 게임을 한창하던, 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의 게임 시장과 요즈음은 많이 달라졌다. 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의 게임들은 좀 더 복잡하고 다양한 재미를 주는 것이 좋은 게임의 원동력이 되곤 했었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다양한 컨텐츠가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시점이고, 때문에 요즘 게임들은 '진득히 하는 것'보다는 짧은 플레이타임과 너무 복잡하고 골치 아픈 것 보다는 쉬우면서도 새로운 자극을 주는데에 집중하는 것 같다. 시대적인 변화에 따라서 게임도 변화하고, 그에 따라 게이머들의 취향도 함께 경향성을 쫒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Mark of The Ninja는 과거 메탈기어 시리즈, 천주 시리즈를 기반으로 한 창 인기를 끌었던 '잠입액션 류'게임들을 요즘 입맛에 맞게 잘 퓨전시켰다고 생각한다. 게임의 패러다임이 변하는 '과도기'에 2D게임은 3D게임 시대에 걸맞지 않는 '퇴행'이라는 의견까지 있었지만, 내 생각에 2D 게임은 퇴행이 아니라 Classic인 것 같다. 난이도도 적당하니 이런 류의 게임을 좋아한다면 꼭 해보길!

2013년 7월 12일 금요일

0133 퍼시픽 림


멋진CG를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문명의 이기가 없었다면 아직도 장난감같이 보이는 파워레인저 로봇들을 보며 꿈(덕후의)을 키워야 할 것이다.

일본인 여자주인공이 우리의 미적 기준에 심히 어긋나는 것(내 주관만은 아닐 것이라 확신한다.)은 몰입감을 떨어 뜨렸다. '투자자 딸'과 같은 낙하산 배우인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그녀에 관해 찾아 봤더니 헐리우드에서 인기 좋은 일본인 배우란다. 생각해보니 그녀의 인상은 '미국 카툰, 게임'에 나오는 '동양인 여자 캐릭터'의 전형적인 모습을 띄고 있었다. 확실히 서양인의 미적관점에선 그녀가 동양미인인가 보다.

일본 로봇만화의 냄새가 '와인에 재운 삼겹살'같은 느낌으로 중간 중간 배여있다. 놀라운 것은 이 영화가 20년 간의 의문을 풀어줬다는 사실이다. 로봇만화에서 특정 '필살기'라고 불리는 무기들을 사용할 때 주인공이 그 기술 이름을 외치는 것(ex, xxx블라스트!, xxx크래쉬! 로켓xxx!)은 아무 의미 없는 것이 아니라 '시리'가 그 기능을 작동하게끔 하기 위해서 라는 것이다.

스토리 전개의 매끄러움은 논외로 한다. 이런 영화에서 스토리를 따지는 것은 횟집에서, "광어회 웰던으로 시켰는데 덜 구워진 것 같아요. 좀 더 익혀주세요."라고 하는 것과 같다.

0132 노팅힐



누군가는 평범한 삶에 염증을 느끼고, 누군가는 평범한 삶을 갈망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신에게 결핍되어 있는 것을 갈망하는 경향이 있지 않을까? 그것을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채우고 싶어하지 않을까? 노팅힐은 기본적으로 '로맨틱 코미디'이고 복잡한 메시지나 스토리 전개를 담고 있지 않지만 이러한 문제 의식에서 출발하는 이야기이다.

가장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주인공과, 가장 화려해보이는 여배우의 우연한 만남에서 사랑으로 이루어지기까지의 이야기는, 적당히 가벼우면서도 로맨틱하다. 이런 식의 이야기는 '공감대 형성'이 가장 큰 무기가 되곤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면에는 '매끄러운 이야기 전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연히 여주인공을 만나게 된 것, 그리고 만남을 이어나가는 장면들이 다 그럴듯하고, 남자주인공의 실망하는 장면, 고뇌하는 장면이 매끄럽게 연결되어서 주인공에 더 공감할 수 있었고, 그래서 무척 재미있게 봤다.

내 리뷰에 빠질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차원 읽기'이다. 여주인공이 '영화배우'라는 점을 이용하여 영화 포스터 안에 영화포스터와 남자 주인공이 등장한다. 영화 속 세계에 '노팅힐'이라는 영화는 존재하지 않지만, 두 포스터(노팅힐의 포스터와 포스터 안의 포스터)는 같은 제목 글자를 사용하고 있다. '영화 속 영화'를 통해, 두 단계의 차원(우리가 영화를 보고 있는 현재와, 노팅힐 영화 속 세계) 모호하게 함으로써 이야기를 좀 더 그럴 듯하게 만들어준다.

노팅힐은 부족함 없는 웰메이드 로멘틱 코미디이다.

0131 그리스인 조르바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어보려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의 추천이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라는 평이 특히나 날 이끌리게 했다. 꽤 두꺼운 분량에 선뜻 읽기 시작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열린책들' iPad 앱에서 프로모션으로 그리스인 조르바를 무료로 배포하는 것을 보고 다운을 받게 되었다. iPad로 자투리 시간이 생길 때마다 읽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읽는 내내, 나는 이 이야기의 화자이자 실제 작가인 주인공과 매우 닮아 있었음을 알게 되었고, 그과 나 자신을 동일시하며 이야기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주인공은 독서를 좋아하고, 책 속에 무언가 깨달음이 있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나도 막연히 그렇게 믿으며 그런 삶을 살고 있었다. 책을 읽어야만 인간의 지평이 넓어지고, 지혜로워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것이 '더 좋은 삶'을 살게 해줄 거라고 믿었다.

조르바는 이러한 주인공의 삶의 태로를 대놓고 반박한다. 인생을 살고 있지 않다고, 책 속에는 인생이 없다며 주인공에게 '삶'을 살라고 충고한다. 조르바의 삶은, 주인공이 옆에서 지켜보며 아주 상세하게 묘사하여 보여준다. 책 말미에도 나오는 것처럼, 그는 조르바의 삶을 생생하게 재현해내는 것을 하나의 사명으로 여긴 것이다.

'카르페디엠'이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뜻의 라틴어로 꽤나 유명한 인용구이다. 그리고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봤을지 모른다.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고? 맨날 놀기만 해도 된다는 건가? 이건 좀 모순적인 것 같은데...'

조르바의 삶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카르페디엠'이라는 말은 전혀 모순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매순간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며, 그 순간 이외의 것에는 모두 신경을 꺼버린다. 내 생각에 그러한 삶의 태도 이면에는 '우리가 영원할 수 없음'을받아들이는 과정이 있었을 것 같다. 조르바 역시 죽음에 대해 고뇌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그에게 죽음이란 극복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삶의 한 부분'일 뿐이었다.

많은 '행복론'이 현재에 충실하라고 부르짖는다. 그것이 탁상공론처럼 느껴지고, 뜬구름 잡는 것 같다면 '그리스인 조르바'를 꼭 읽어보길 바란다. 그의 삶에서 행복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2013년 7월 8일 월요일

0130 헝거게임



'반역죄를 반성하게 만드는 의미로, 반역이 일어난 지역에서 매년 청소년을 한 명씩 뽑아 서로 죽이게 만드는, 게임'이 헝거게임이자 이 영화의 주요 소재이다. 예전에 일본 만화이자 영화로도 나온 '배틀로얄'을 들어본 적이 있다면, '아이들이 서로 죽이게 만드는 게임'이라는 점에서 매우 흡사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배틀로얄'의 헐리우드 버전인가 싶었다. 보고난 지금의 평은, 헝거게임의 작가가 배틀로얄에서 영감을 받았든 안 받았든 간에, 배틀로얄과 비슷한 소재를 잘 발전시켜 차별화된 세계관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꽤나 익숙한 소재일 수도 있는, 빈부격차, 계층 간의 갈등을 헝거게임의 배경으로 사용했다. 권력층의 무자비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권력층은 원색 계통의 튀는 색깔과 현재 우리의 시선에서 아주 이상하게 보이는 패션을 보여주는데, 이는 말그대로 권력층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시각적으로 나타내고자 한 것 같아서 흥미로웠다.

'작은 희망을 남겨 줘야 더 발버둥 친다.'는 인상적인 대화 장면이 나오는 데, 사실 이것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일 것이다. 영화에서 '반역'이 일어난 정황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진 않지만 서민층이 권력층의 무자비함에 분개했기 때문임은 안 봐도 뻔하다.

내용이나 세계관 자체는 꽤나 의미심장하지만, 내용 전개 상에서 아쉬운 점이 몇 가지 보였다. 일단 '헝거게임' 준비하는 장면이 너무나 길다. 몇몇 장면을 빼도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 영화에 가장 끌리는 요소는 역시나 '헝거게임'이라는 소재의 자극적임 덕분일텐데, 메인 요리를 맛보기 전에 에피타이저가 너무 많이 나오는 느낌이랄까.

이 영화가 시리즈물로 만들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정쩡한 결말도 약간은 아쉽다. 개인적으로는 시리즈물로 나오는 영화라도, 매체가 '영화'인 이상 각각 영화들의 스토리의 '완결성'이 존재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본 영화는 결말이 약간 어정쩡하다.(이전에 본 '스타트랙'시리즈나 '다크나이트'시리즈가 이런면에 아주 충실한 것 같다.)

약간 아쉬움이 있지만,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소재가 '확 땡기는' 이야기에 강한 몰입감이 생기기 때문에 무척 재미있게 봤다. 역시나 후속작을 기대해봐야겠다.

0129 스타트랙:더 비기닝


1탄이 존재하는지도 모른채로 2탄을 본 나는, 2탄 자체로도 매우 재미있게 봤기 때문에, 1탄이 더욱더 기대되었다. SF영화의 시초로 불릴 법한 스타트랙의 스토리를 요즘 현대식 CG와 곁들여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더 비기닝(Beginning)이라는 제목답게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특징과 성격을 보여주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2탄 자체로도 재미있게 봤던 캐릭터들이, '저런 배경이 있었어?'라고 할만큼 깨알같은 요소가 재밌었다. 가령 약간은 실수할 법한 파일럿인 술루의 '펜싱'이라든가, 체호프의 오퍼레이터 역할과 같은 것이 그러하다.(정확히는 모르겠지만 2탄에선 확실히 엔지니어로 탈바꿈했다.)

글쎄. 사실 특징적이거나 인상적인 장면보다는, 2탄과 매우 흡사했다. (사실 2탄이 1탄을 계승하여 재미를 발전시켰다고 생각하면 되겠지만, 나는 2탄을 먼저 봤으니..) '미드 시리즈'물을 보는 느낌이랄까? 전체적으로 다양한 장면들이 재미있게 녹아 들어있다.

1, 2탄을 종합해보면, 일단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의 핵심으로 늘 꼽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보여주는 데에 온 힘을 기울이는 듯 하다. 블랙홀이나 시간 여행과 같은 SF의 단골 소재는 세계관과 어색함 없이 잘 녹아들어 있다.

그냥 말이 필요없을 것 같다. 그저 3탄을 기다리는 수 밖에.

2013년 7월 1일 월요일

0128 미래를 바꾼 아홉가지 알고리즘


세상에는 많은 과학 대중서가 있다. 우주 과학의 대중서인 칼세이건의 '코스모스'나, 유전과학의 '이기적 유전자' 등등의 과학서들은 이미 대중에게 많이 읽혔다. 이런 대중서들은 각 분야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준다.

이 책은 컴퓨터 과학의 대중서이다. 컴퓨터는 과학으로 불리기 시작한 역사가 짧다. 그래서 일까? 대중들에게 쉽고 재밌게 설명해주기 위한 '대중서'는 찾아 보기 힘들다. 이 책은 이런 갈증을 무척 시원하게 해소시켜 준다.

인터넷 검색을 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는가? 인터넷 뱅킹의 '보안 모듈'은 왜 설치해야하는 걸까?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이런 생극을 한 번이라도 해본 적이 있다면 무척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복잡한 수학을 이해할 필요없이, 중, 고등학생 정도의 수준이라면 이해할 수 있도록 저자가 세심하게 배려한 흔적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저자가 각 알고리즘의 '적절한 비유'를 잘 만들어 내서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만큼 우리가 흔히 쓰는 컴퓨터 알고리즘의 원리는 우리의 실제적인 일상 생활과 동떨어진 곳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반증이 아닐까?

저자는 마지막에 이 책의 목적을 '우리의 삶을 바꿔 놓은 컴퓨터에 대한 경외감을 갖을 수 있도록'하는 작업이라고 했는데, 훌륭히 수행해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론 주변 모든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이미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린 컴퓨터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작은 호기심을 가졌다면 말이다.

2013년 6월 23일 일요일

0127 아메리칸 싸이코


전체적인 인상은 '레옹' 때와 좀 비슷하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것도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이런 비슷한 내용의 전개(주인공의 혼란을 베이스로 한)는 익숙한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겠지.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은, 이 영화는 '상징적 이미지'를 표현하려는 노력을 무척이나 많이 했다는 것이다. 마스크팩을 벗겨 내는 장면이나, '살인' 후에, 피가 얼굴 반쪽에만 튀어서 피가 튀지 않은 옆 얼굴만 비춰주는 장면은 별 것 아닐 수 있는 장면이지만, 내게는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는 것을 잘 담고 있었다고 평가할 만 하다. (이런 식의, 상징을 이용한 표현 방법이 상당히 많고, 그런 것을 읽어 낼 때 마다 즐거웠다.)


주인공은 '사회가 만들어낸 욕망'에 억압되어, 자신의 존재에 혼돈을 느낀다. 그리고 그 혼돈을 '살인과 폭력'이라는 광기 어린 행위로 해소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영화는 이러한 현상이 특이한 한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갖을 수 있는 문제라고 암시하고 있는 것 같다. 단지, 자신을 좀 더 잘 통제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인 것이다.

포스터에서 보이는, 식칼에 비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며, 우리 모두 내면에는 표출하고 싶은 '광기'를 가진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2013년 6월 19일 수요일

0126 진격의 거인 - the animation


'진격의 거인'의 스토리에 관해서는 만화책 리뷰를 통해 이야기했었다. 애니매이션이 한국에서 대히트를 치면서(뭐 일본은 만화책부터 히트를 쳤으니...)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사실 만화책을 꼬박꼬박 봐오던 입장에, 같은 스토리의 애니매이션이 인기를 끄는 것을 보며 '좋은 스토리를 이제야들 알아보시는 군...'과 같은 식의 생각을 갖고 있었다.

여기서 그쳤다면 이 리뷰를 쓰지 않았겠지. 애니매이션은 얼마나 재밌길래 이렇게 난리들인거야? 라는 생각에 보게 되었다. '스토리를 아는데 뭐 재밌겠어?'라는 생각과 함께.


재밌다. 스토리 알고 봐도 재밌다. 너무 재밌다.....


일단, 원작을 너무나도 훌륭하게 재현했다는 점. '입체 기동장치'를 정적인 만화책으로만 보면서 상상하다가 '제대로 이식해놓은' 애니매이션을 보고 있으니 주인공들이 너무나도 멋져 보이더라.

두 번째는 '완급 조절'이다. 내가 생각할 때 '인쇄물'과 '영상물'은 중요한 차이가 있다. '인쇄물'과 달리 '영상물'이라는 매체는 독자가 집중하는 것을 제작자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인쇄물'은 여러 독자가 같은 내용을 읽고 다른 감동을 받게 만드는데에 적합하고, '영상물'은 제작자에 의해 완벽히 의도된대로 감동을 받게할 수 잇는 것이다. 진격의 거인의 애니매이션은 이 차이를 제대로 짚어 내서 만든 것 같다. 만화책에서 제대로 언급된 부분이나 표현을 생각했던 부분을 부각시켜 감동을 배가 시키 것이 무척 적절하여 '같은 스토리, 다른 감동'을 느끼게 해주었다.

무엇보다도, 진격의 거인 애니매이션은 매체가 주는 특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기에, 이렇게 리뷰를 남긴다..

0125 맨오브스틸


이걸 보고 나서야 알았다. 난 '슈퍼맨' 관련 영화, 드라마를 단 한 편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그냥 원조 슈퍼 히어로물로, 나쁜 놈들을 때려 부수는 그런 종류의 스토리로만 알고 있었다. 보는 중간중간 느낀 것은, 맨오브스틸의 얼마나 '정통성있게' 오리지널 세계관을 가져왔는지는 잘모르겠지만, '슈퍼맨의 기원'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미국의 '히어로물'들은 특히나 '기원'에 대해 철저히 설명하려고 드는 경향이 있다. 관객이 '정말로 슈퍼 히어로가 존재할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하게 만들려는걸까. '그럴지도 몰라..'만으로도 이야기가 더 재밌어지긴 할 것 같긴 하다.

미국 히어로물들의 또 한 가지 공통점은 '히어로의 가치갈등'이다. '정의'가 무엇인지. '가치에 관해 끊임없이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히어로'들은 저마다 독특한, 엄청난 힘을 가졌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그만큼 '힘을 가진 자'로서의 숙명을 두드러지게 만든다. 그들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서 '힘을 가지는 것'보다 '힘을 어떻게 쓰는가..'가 더 중요함을 강조하는 것이 아닐까. 맨오브스틸의 스토리가 완벽하다고 할 순 없지만, '액션 히어로물'로서는 합격점을 받을만 하다.

300으로 유명한 잭 스나이더 감독작품답게, 액션이 정말 간드러진다. 그냥 글로 표현하기엔 부족하다. 정말 누구에게나 재능이라는 것이 주어질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잭 스나이더 감독의 액션 영화는 남자의 로망을 후벼판다.

슈퍼맨은 배트맨보단 매력적이지 않다. 대신 더 쎄다.

2013년 6월 8일 토요일

0124 코펜하겐


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 폭탄 개발을 둘러싼 과학자, 닐스 보어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코펜하겐에서의 만남에 대해 다룬 이야기이다. 이 만남에 관해서는 전해지는 바가 거의 없어, 과학사에서는 풀리지 않는 궁금증으로 남아있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그들의 실제 만남에서 무슨 대화가 오고 갔을지에 대한 추측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순수하게 '앎을 추구하는 과학자'인 이들에게, 세계대전이라는 상황은 도덕적, 정치적 판단을 해야하는 막중한 책임을 강요한다. 작은 한 마디, 작은 행동에 따라 수 많은 생명, 더 나아가 지구의 존망이 결정된다고 생각하면, 그들이 받았을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을까. 감히 상상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야기는 우리 자신에 대해 제대로 알려면, 대화를 끊임없이 시도하면서, 자신의 의견이 투영된 상대방을 봐야한다는 메시지를 담는다. 보어를 방문한 하이젠베르크 역시 자신이 왜 그렇게 했는지를 정확하게 떠올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무척 재미있다. 사실 우리도 그럴 때가 많지 않은가? 적어도 나는 '왜 무언가를 하고 있는지. 왜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졌는지.' 명확히 하지 못할 때가 많다.

재밌는 것은 이야기가 3단계의 차원에서 비슷한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1. 등장인물들이 연구하는 '양자'는 우리가 '관찰'이라는 행위를 하기 전까진 불확정적라는 것.
2. 하이젠베르크가 보어와 '대화'를 하기 전 까진 그 자신의 의도가 불확정적이었다는 것.
3. 이 이야기(연극대본)이 만들어지기 전까진, '보어'의 입장이 적힌 편지가 공개되지 않았으나, 이야기가 발표된 이후로 '보어'의 입장이 적힌 편지가 유가족들에 의해 공개되었다는 것.

1번은 등장인물들이 연구하는 소재이며, 2번은 등장인물들 자체이고, 3번은 그 이야기 위의 현실세계이다. 세 단계에서 절묘하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담김으로써, 이 이야기는 훨씬 더 완성도 높은 함의를 얻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보고나니, 공부를 더 많이 한 듯한 영화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재미없지도 않다. 앞뒤 맥락을 이해할수록 생각해볼 것들이 많이 주어져서, 정말 풍성한 영화다.

2013년 6월 6일 목요일

0123 Being 존 말코비치


언젠가, 후배와 재귀성에 관해 이야기를 하게 된 적이 있다. 그 후배는 독립영화의 아이디어라며, 영화감독이 영화찍는 모습을 담은 독립영화를 만들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런 소재를 사용할거면, G.E.B를 읽어보라고 추천해주었다. G.E.B에서 읽었던 재귀성에 관해 조금 설명을 해주고 나니, 그 친구는 되려 이 영화를 추천해준다. 이 영화에서도 비슷한 소재를 사용했다며.

한국 제목은 '존 말코비치 되기'이지만, '~ 되기'라는 표현으로는 'Being'의 뉘앙스를 잘 못 살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도 잘 못하는 주제에 뉘앙스를 어찌 알겠냐만은, 그냥 느끼기에 그렇다. 이 리뷰의 제목은 그래서 'Being 존 말코비치'다. 전부 영어로 쓰자니 말코비치가 읽기 어려워서.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다양한 방면으로 상상력을 펼친 것을 그냥 보여준다.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소재만을 가지고, 인간의 욕망, 사랑, 명성, 생명, 기억, 시간 등등 많은 것들을 보여 준다. 이것들이 'Being'으로 연결된다는 것이 참 멋지다.

후배가 추천해주게 된, '말코비치가 말코비치 안으로 들어가는', 무한 회귀에 빠지는 장면 또한 매력적이다. G.E.D에서는 무한 회귀성으로 차원을 뛰어넘는다고 했던 것 같은데, '말코비치 들로만 이루어진 세상'이란 결국 우리 세상이 한 차원 위에서 보면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는 것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뭐랄까. 얼마 전에 본, '연애의 온도'에서 느꼈던, '억지식 설명'이 없어서 좋았다. '왜 하필 존 말코비치인지', '왜 그런 구덩이가 거기 있는지' 등등.. 어차피 아무리 제대로 설명하려고 해봤자 말이 안되는건 안되는거다. 감독은 그냥 안하는게 낫다는걸 잘 아는 것 같았다.

영화는 봐도 봐도 끝이 없다. 이렇게 새로운 것들을 만날 때마다 감탄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다양한 영화를 쉽게 영화를 접할 수 있는 세상에 감사해야 할 것만 같다.

2013년 6월 2일 일요일

0122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최근에는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수도 없이 되새기곤 한다.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을 때의 그 마음을 되찾고 싶다. 좋아하는 마음에서, 스스로의 길로 정해버렸을 때, 좋아하던 일은  어느새 '해야하는 것'으로 변질되어 버려 더 이상 즐거움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그 때의 그 초심을 다시 되찾을 수 있다면... 그 때처럼 열정적일 수 있다면..하는 생각을 무척 많이 한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내 마음 속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이 책은 그런 문제의식을 갖고 읽게 된 것은 아니지만, 천천히 음미하고 정리하고 나니, 이 문제에 대한 갈피를 어느 정도 잡게 해주었다. 하나하나 나열하진 않겠지만, 이 책에선 다양한 놀이나 영화 같은 예술의 형태 속에 담긴 숨겨진 의미들, 그 놀이들이 시대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고 발전해왔는지를 보여주며, 그 속에서 '상상력'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드러내준다.


'성숙의 지혜'를 가지고 '소년의 눈'을 갖는 것


책에 자주 쓰인 표현을 멋대로 조합해서 내 맘에 드는 문장을 만들어 보았다.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말에는 이런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이 책에서는 예술과 상상력, 창조성에 대해서만 이런 식의 내용을 이야기한 것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비단 몇몇 분야에만 한정될만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어떤 분야에서든 일가를 이루려면 엄청난 시간을 들여 그 분야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검토해봐야할 것이다. 관련된 지식을 배우고, 익히면서 말이다. 이것이 '성숙의 지혜'일 것이다.

'소년의 눈'은 항상 처음 배우는, 처음 보는 사람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소년의 눈'을 갖고 있으면 항상 흥미로우며,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그동안 '성숙함'을 쌓기 위해 '당연한 것'으로 굳어졌던 것을 깨뜨릴 수 있다.

소년과 슬럼프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소년에겐 슬럼프가 없다. 소년은 자신의 일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그냥 그저 그것이 흥미롭고, 궁금하고, 즐거울 뿐이다.

2013년 6월 1일 토요일

0121 스타트랙:다크니스


성격 상 특정 시리즈를 보려면 전체를 다 봐야만 직성이 풀린다. 스타트렉 시리즈는 SF영화계의 원조 격임은 잘 알고 있지만, 그 시리즈가 너무나도 방대해서 입문조차 생각하지 못했었다.

사실 본 영화를 '스타트렉에서 새로 만들어지는 시리즈'로 알고 보게 된 것인데, 이전에 '더 비기닝'이 있었다는 것을 본 리뷰를 쓰면서 알게 되었다. 그만큼 이전 스토리를 몰라도 매끄럽게 영화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단 이야기이기도 하다.

일단 세계관은 말할 필요가 없다. 원조가 원조인 이유랄까.  개성적인 세계관과 그 세계에서 벌어지는 가치관의 갈등이 정말 훌륭하다. 함대의 모습을 보는 것, 코어 엔진이 작동하는 것 등등, 잘 짜여져 있다는 느낌을 시종일관 받았고, 덕분에 이야기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영화는 자체로도 훌륭하고, 누구나 봐도 재밌다고 느낄 법하다.

여기에 더해서 할 이야기가 꽤나 많다. 첫 번째로는 악당역으로 나오는 '칸'. 나는 그를 '셜록'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의 잘못은 아니겠지만, 한 배우가 특정 작품에 엄청나게 강한 임펙트를 주었을 때의 좋은 예를 보여주는 것 같다. 한 작품의 시그니처로 자리매김하면서 작품의 성공을 주도하기까지는 좋았지만, 다른 작품에까지 영향을 주는 것은 조금 아쉬운 점으로 느껴진다.

두 번째는 다른 작품에서 인용된 스타트렉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스타트렉이 잊을만하면 언급되던 빅뱅이론 시리즈에 덕에 각종 용어나 인물들이 좀 더 친숙하게 느껴졌다. 또, FTL(Fater Than Light)이라는 '함대 운영 시뮬레이션'게임을 처음 해보고 뭔가 독특한 세계관이 느껴졌었는데, 전적으로 스타트렉의 세계관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거대함을 느꼈다.
이런 세계를 상상하고 창조하려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경외감이 느껴지는 밤이다..

2013년 5월 31일 금요일

0120 인생학교:섹스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는 법


이 책에서 하고자 하는 일은 '섹스'와 '사랑'의 위계질서 재정립이다. 우리의 사회적 관념은 '섹스'를 쉬쉬하고 숨겨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반면 '사랑'은 고결하고 순수한 것, 진정 추구해야할 가치로 여겨 진다.

우리의 삶은 생각보다 녹록치 않다. 아무리 쉬쉬해야할 대상이지만,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진화생물학적으로 우리가 '동물'로서 유전자를 퍼뜨려야한다는 진부하고 재미없는 설명은 제쳐 놓더라도 '사랑'과 '섹스'를 다른 차원의 것으로 여기게 된 우리는 이런 문제로 불행에 빠지기 쉽다.

저자인 알렝 드 보통은 이 책에서 '섹스'와 '사랑'을 평행선 상에 놓는다. 무엇이 더 추구해야할 가치이고, 지양해야할 가치이다..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단지 '사랑'을 느끼게 되는 것과 섹스를 하고 싶어지는, '성욕'을 느끼는 것을 똑같이 이해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성욕과 더 나아가 사랑을 느끼게 되는 대상에는 우리의 무의식이 반영된다고 설명하는 점이다. 성장 배경에 따른 부모님의 영향이나 스스로에게 결핍된 것으로의 열망 등이 성적 취향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나의 입장에 대입시켜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꽤나 잘 들어맞는 것 같아서 재밌었다.

'인생학교'의 다른 시리즈를 읽어보진 않았지만
그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궁극적으로 뭔지는 대충 알 것 같다.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고,
그를 받아 들이고 인정하며 사는 것.
그것이 행복이다.


인생학교에서 배워야 할 것은 결국, '우리가 누구인가'에 대한 답변이 되어야 할 것이다.

2013년 5월 29일 수요일

0119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


'20초의 용기'에 관한 내용이 훌륭하다며 친구가 추천해줬다. 나는 이 영화를 전형적인 패밀리 드라마라고만 생각했었고, 이 친구의 추천이 없었다면 보지 않았을 것이다. 보고 난 뒤의 느낌은, 예상대로 전형적인 패밀리 영화인 것도 맞고, 얼핏 보게 된 리뷰들의 말대로 아역 배우들의 연기가 조금 어색하기도 했다. 뭐, 그래도 이런 점들이 불만스럽지 않았다. 마치 '떡볶이가 왜 맵냐'고 따지는 것 같으니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영화를 그럼에도 보게 된 동기인, '20초의 용기'는 영화 전체로 보면 일부분일 수도 있으며 전체일 수도 있다. 그래서 좋았다. 그리고 나서 잘 생각해보니, 전형적인 패밀리 영화는 묘하게도 '엄마 아빠의 사랑이야기'로 결론짓게 되는 경우가 많더군. '패밀리'가 엄마 아빠의 사랑 없이는 탄생하지 않았을 테니까.

사실 조금 불만스럽게 느꼈졌던 점은 지나치게 '공식'에 짜맞추려는 흔적이 보였다는 점이다.
패밀리 영화의 공식을 그 동안 봐왔던 것들을 토대로 그냥 내가 즉석에서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보면 다음과 같다.

1. 부부 간의 갈등, 혹은 배우자와의 사별.
2. 사춘기 자녀의 방황
3. '각 영화만의 특징적인 요소'(여기서는 동물원)로 인하여 자녀들과의 갈등. 문제 발생.
4. '그 요소'에 대해 생각을 다르게 갖게 하는 계기 발생.
5. '그 요소'를 통해 자녀들과의 갈등 해소, 자녀들과 더 가까워 짐
6. 자녀들을 계기로 부부 간의 갈등 조금씩 해소, 부부 간의 사랑 재확인(혹은 새로운 사랑과 가까워 짐)
7. 행복한 가족.


대부분의 패밀리 영화가 이와 같은 공식에 짜 맞춰 진다고 생각한다. 과거 유명한 수 많은 작가들 역시 재미있는 이야기를 공식화하려는 시도가 꽤나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고, 이런 공식 자체에 맞게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각 이야기의 요소가 공식에 맞게 얼마나 '자연스럽게' 짜여져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내 생각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려면, 그 세계관이 어떤 이야기가 되었든, '우리의 삶'을 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거 말이 안되는 것 같은데..'라고 하면 몰입도가 떨어지게 되며, '내가 겪었던 일, 겪을 일'같다고 느끼면 그만큼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이다. 얼마 전 리뷰인, '연애의 온도'가 '공감'에 집중한 것도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조금 반전이었던 것은 이 이야기가 실화라고 언급해주면서 끝나는 부분이다. 아무래도 '실화'를 좀 더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각색을 많이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중간중간 '공식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는' 흔적이 보이는 것 같아 아쉬웠던 점 말고는, well made 패밀리 영화다.

2013년 5월 28일 화요일

0118 Minecraft:The stroy of Mojang


"3D 그림판"이라는 이야기로 Minecraf(마인크래프트)에 대해 처음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이게 과연 재밌을까..라는 의문을 가졌고, 쉽사리 하게 되진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패드용으로 마인크래프트가 출시되었고 다른 게임에 비에 조금 높은 5달러 정도의 가격이었지만 워낙 명성이 자자했던지라 구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사실 아이패드용 마인크래프트를 많이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재미를 느끼지도 못 했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블록 놀이. 그래 블록 놀이. 근데 뭐? 귀찮게 언제 일일이 다 만들고 있지?"

그렇게 몇 시간하지 않고 마인크래프트와는 멀어지게 되었다.


그래, 내게 이 게임은 첫 인상과 끝 인상 모두 그저그랬다. 수 많은 '마인크래프트 따라잡기류'게임이 나오는 것을 보고 의아한 생각도 들었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마인 크래프트를 열광할까?

영화를 본 뒤 깨달은 것은, 아이패드 게임 버전은 컴퓨터로 치면 '넷북'같은 느낌이다. 이동성에 초점을 맞춰 할 수 있게 만든 것이지, 게임의 본질, 만든 것을 서로 공유하는,에 접근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나는 단지 넷북만 접하고 컴퓨터 자체 성능이 왜 이렇게 안 좋냐는 평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 게임은 혼자하면 그 본질에 닿을 수 없기 때문에, '그저 그런 게임'으로 남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문제가 없는 사람들, PC로 접한, 활발한 커뮤니티와 함께 게임을 해 나아가는 서양인들을 다큐멘터리 속에서 보고 있으면, 마인크래프트의 혁신을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인크래프트는 단박에 내 게임 개발의 이상향으로 자리 잡아 버렸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마인크래프트를 즐기는 사람들은 '마인크래프트'로 인해서 긍정적인 삶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을 알 수 있다.

마인크래프트가 교육에 쓰이는 교실을 보며, 그 아이들이 참 부러웠다. 마인크래프트 속의 수 많은 웅장한 건물들을 보며, '창조하는 세계'를 창조한, 마인 크래프트의 개발자가 너무나도 부러웠다. 그는 내 이상을 현실로 만든 사람이었다.

마인크래프트는 단순한 게임의 영역을 넘어선, '소셜'과 '창조성', '상상력'을 결합시킨 하나의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리오'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을 만큼 혁신적이다.

그의 한 마디가 가슴에 와 닿는다.

'남의 충고보단 자신의 마음을 따르라. 계획만하고 실행하지 않는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2013년 5월 25일 토요일

0117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


9년에 한 번씩 나오는 시리즈라는 말, 하나만 듣고 보게 되었다.  멜로 영화가, 시리즈인 것도 대단한데, 시리즈가 정확히 9년에 한 편씩 나온다니, 대체 무슨 생각일까 싶었다. 보고서 더 놀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독자들에게 영화 속 이야기가 진짜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게 하기 위해, 9년 후에 나온 영화는, 영화 속 세계도 9년이 흘러 있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영화는 '실제 삶'이라는 입장에서 한 차원 낮은 단계의 세계라고 할 수 있는 데,  현실과 '시간'라는 차원을 평행선 상에 놓음으로써, 단지 그것만으로도 영화 속 이야기가 더 현실감있게 느껴지고, 정말 어딘가에 영화 속 주인공들이 살고 있을 것만 같다.

9년에 한 편씩 후속작이 나와, 대략 20년에 걸친 프로젝트를 기획한 사람이 누군지, 대단할 따름이다. 더불어 9년 후에 또 후속작이 나올지도, 기대가 된다. 그 영화를 보며 지금과 지금의 순간을 떠올릴 것만 같다.

영화는 단순한 멜로영화로 보기엔 훨씬 더 대단하다. 수사법, 변증법 공부랄까. 영화는 단지, '다양한 공간 속에서 인물들 간의 대화를 보여주는 것' 밖에 없다. 대화의 내용은 때로는 깊이 있기도 하고, 주인공들의 개성을 드러내기도 하며, 인간으로서의 고민을 보여주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라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대화를 주고 받으며, 조금씩 가까워지는 관계. 그 사이에서 알 수 없는 순간에 조금씩 싹트기 시작하는 감정. 그런 것들을 세세하게 보여주는 것, 마치 언젠가 있었던 일처럼, 혹은 사람들이 경험하고 싶은 감정처럼, 실제 연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주변 여성 친구들이 모두 이 영화를 최고로 꼽기에, 한 번쯤 궁금해진 것도 있다. 그리고 '늑대소년'을 봤을 때처럼, '아, 여성들이 좋아할만 하다.'라는 느낌을 확실히 받았다. 그렇다고 남자들에게 재미없는 영화는 결코 아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에서 '사랑'이 큰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 3부작을 통해 '사랑'이 뭔지 조금은 감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2013년 5월 23일 목요일

0116 연애의 온도


영화관에서 보기까지는 조금 뭔가 아쉽지만 무척 기대되는 영화들이 있다. 내게는 이 영화가 그런 느낌이었고, 그래서 VOD가 뜨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영화를 보면서 건축학 개론이 떠올랐다. '첫사랑에 대한 공감'이라는 키워드 하나에 집중하여 뻔할 수 있는 한국 멜로영화였음에도 400만 관객을 돌파하지 않았던가. 분명 건축학 개론이 '공감'하나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에, '오래된 연인에 대한 공감'에 집중한 이 영화가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거다.

두 명의 매력적인 남녀 주인공은 흔히 있을 법한 오래된 연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도 여기서 꽤나 많은 공감대를 형성했고, 덕분에 아련한 추억도 한 번쯤 떠올릴 수 있었다.

영화 내용 전개적인 측면에서 조금 아쉽게 느껴졌던 방식은, 주인공들의 내면을 들려주기 위해 중간 중간 인터뷰하는 장면들이다. 왜 인터뷰를 하는 걸까의 호기심을 갖게 하지만, 내용 전개상 '인터뷰하는 이유'에 그리 집착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굳이 그 이유를 '다큐멘터리 영화'라면서 설명해야 했을까.

자신들의 이야기가 담긴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지 않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어차피 그렇게 흘러가게 되는 것. 과거 보다 앞으로가 중요하다.'라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던 것은 이해가 가지만, 그것보다 내게 그 다큐멘터리 영화는 둘러 대지 않아도 될 변명처럼 느껴졌다. 차라리 인터뷰에 대한 설명을 깔끔하게 생략해버리는 거나, 아예 인물들의 내면을 인물들의 행동에 반영하여 더 디테일하게 보여주려 노력하는 것은 어땠을까?

 '건축학 개론'에서 '연애의 온도'로 이어지는 이러한 '공감 영화'의 계보는, 누구나 갖고 있을 법한 아련한 추억을 자극시켜주는 데에 그 의미가 있다. 자신에게 '오래된 연인' 태그가 붙어 있는 사람이라면, 좋아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2013년 5월 17일 금요일

0115 위대한 개츠비


소설 원작을 읽은 시점에서, 그 내용의 영화를 본 일은 흔치 않다. 나는 소설보단 비소설을 선호하는 편에 속하며(보통, 개츠비와 같이, 명작들을 읽어 보겠다는 마음에서만 예외가 된다.) 내가 읽어 보게 되는 소설들은 이미 영화화 된 것들이거나 영화화 되기엔 너무 매니악한 소설들(주로 SF류의)이어서 그런 것 같다.

위대한 개츠비는 20세기 영미 문학의 고전 명작으로 평가받는 유명한 소설이다. 어느 날 문득, 고전 소설을 고르다가 무의식적으로 끌려 읽게 된 기억이 난다.. 리뷰를 시작하기 전 일 것이다. 고전 명작(20세기 초 영미 문학 중심으로)을 몇 권 읽고 나서는, 명작이라 불리는 것들 의 '작품성'에 대해서 의문을 갖곤 했었던 나지만, 그 중에서 '개츠비'는 그나마 확실히 좋게 평가했던 기억이 났기 때문에, 영화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대를 품었다.

언젠가 한 번 썼을지도 모르는 이야기이지만, 20세기 초반의 영미 문학들은 '시대적 분위기'에 굉장히 큰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당시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문제의식으로 삼을 수 있는 주제들, 하지만 현재의 나에게는 확 와닿진 않던 그런 것들.. 이것이 내가 '작품성'에 의문을 갖게하는 큰 이유중 하나였다. 개츠비 또한 비슷한 시대상을 그려 내고 있다는 점은 다른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이야기를 풀어 내는 방식에서, 크고 작은 굴곡의 사건들이 마치 요즘 나온 이야기처럼 흥미롭게 얽혀 전개되는 점이, 다른 이야기들 보다 좋게 느껴진 것 같다.

영화 '개츠비'는 소설의 스토리를 충실하게 재현해내고 있다. 무엇보다 '20세기 초반의 미국 사회'를 '시각화'해서 보여줬다는 점은, 예전에 읽었던 소설의 이미지를 다시 떠올려 보며, 이야기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특이한 점으로는, 중간 중간 영상을 독특하게 처리하는 점이었다. 특히 개츠비가 단독 컷으로 나올 때 그랬다. 본 사람은 잘 없겠지만 '스피드 레이서'(비가 출연한, 워쇼스키 형제의)의 인물처리 방식과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배경과 인물이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을 의도적으로 연출함으로써, '관찰자'의 시점에서 '개츠비에게 완전히 몰입된 닉'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소설을 읽으며 얻었던, 이야기에서 얻었던 메시지는 영화로 봐도 좋았다.

눈 앞의 욕구, 욕망에 사로잡혀 '진정 원하는, 진정 고결한 가치'를 추구하지 못하는 인간 사회 속에서, 개츠비는 비록 완벽하진 않지만 그러한 가치를 추구할 줄 아는, 진정 '위대한 개츠비'인 것이다.

심지어 그 가치의 대상인 데이지 조차도, 결국엔 세속적인 가치에 따르는 것을 보며,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함에도, 그 사랑의 의미까지 같기는 어렵다...'는 현실도 보여 준다.

새로울 것은 없긴 했지만. 그리고 무엇보다 내 심상이 '시각화'되었다는 것에서 크게 만족스러웠고, 소설을 다시 한 번 읽은 것 같은 즐거움을 주어서 좋았다.

'개츠비'를 읽기 전의 내가 이 영화를 봤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궁금증이 남는다.

소설을 읽은 사람은 물론이고,
'위대한 개츠비'라는 이름을 들어 봤지만
책 읽는 것이 별로라 꺼리고 있었다면, 추천합니다.

2013년 5월 13일 월요일

0114 군주론


'고전이라 불리우는 것들은 일단 닥치는 대로 읽고 보자.'라는 생각이 언제부턴가 자리 잡았다. '고전'만 읽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엄청 많은 고전을 읽지는 않았지만, 돌이켜 보자면 나름 '다양한 독서 패턴'을 갖게 하는 데에 일조한 습관인 것 같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분야나 그에 관한 책이 있기 때문에(나의 경우엔 흥미롭게 보이는 과학 서적들이 그런 종류인 것 같다.) 그런 선호하는 습관을 의식적으로 깨지 않으면 독서를 통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없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어쨋든 요런 이유로 잘 손에 가지 않을 법한 군주론을 읽게 되었는데, 역시 고전은 고전인지라, 꽤나 새로운 관점을 많이 제시 해 준다. 무엇보다도 군주론이 악명높은 것으로 유명한 점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군주론은 철저히 '실용주의 정치학'이라는 점 때문이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면 응당 속임수도 쓸 줄 알아야 하고, 잔인함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 뒷 부분의 해제를 훑어 보았는데, 이것이 '정치철학'분야에서 꽤나 획기적인 변혁이었다고 한다. 기존 플라톤에서 시작된 정치철학에서는 '군주의 덕, 자비심'과 같은 것들을 강조하며, 이를 철학적인 설명으로 설명했다면, 군주론은 변화무쌍한 정치에 있어서 약삭빠르고 실리를 추구할 것을 강조하며, 과거의 역사적 사실들을 이용하여 이를 뒷 받침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요즘 흔히 보이는 '솔로탈출 연애비법'(그래, 나도 한두 번은 읽어 봤다.)과 같은 책들처럼 자세한 상황상황에서 '자신의 권력을 계속 유지하는, 현명한 군주라면 이렇게 해야 한다..'와 같은 지침들이 보이지만, 중요한 맥은 하나다.


"자신의 역량을 갖추고, 자신의 기질이 시대적 상황에 그에 부합하면 좋은 군주가 될 수 있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자신의 기질을 바꿀 줄 아는 것이 현명함이다."


재밌었던 것은 책 전체 내용이 '좋은 군주가 되는 법'에 관하여 쓰고 있지만, '좋은 현대인이 되는 법'으로 읽어도 꽤나 많은 내용이 부합한다는 점이다. '좋은 현대인이 되는 법'과 '좋은 사람이 되는 법'은 엄연히 다르다.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 속에서 실리에 맞게 행동하는 법'이라는 점에서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일까.


좋은 말들이 많다. 이론 전개를 위해 설명된 15, 16세기 유렵의 역사는 익숙치 않아서 약간 적응하기 어려웠지만 이야기 자체는 정말 쉬운 이야기로 잘 풀어져 있다. 그렇다고 막 재밌고 그렇진 않다만... 관심이 생긴다면 한 번 쯤 읽어 보시길.



2013년 5월 5일 일요일

0113 최고의 공부



한 권의 책을 읽는 데에는 엄청나게 많은 이유가 존재할 수 있다. 나는 호기심이나,명작에 대한 욕심 등을 통한 독서가 제일 많은 편인 것 같다. 그 외에, 가끔 충동적으로 책을 읽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현재의 고민을 가장 잘 답해줄 것만 같은' 책의 경우다. 사실 이런 종류의 책은 지금 당장의 내 삶에서 직접적인 관심사이기 때문에 계획에 없다가도 바로 사게 되고, 또 다른 일은 다 제쳐 두고 읽게 된다. 이렇게 읽게 된 책의 특징으로는, 다 읽고 난 후에 고민이 어느 정도 해결되었는가에 따라 만족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 책이 사실 그렇다. 인문학 코너의 베스트 셀러에 올라가 있길래 별 기대없이 뒤적여 봤는데 목차에 꽤나 흥미로운 내용이 많아 보였다.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 생각하며 시작했던 일에 슬럼프가 오면서, 예전처럼 좋아하게 끔, 다시 금 즐거운 마음의 동기부여를 하는 데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단박에 구입해서 읽게 되었다.

예전에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몇 가지 핵심 개념을 가지고 끊임없이 비슷한 사례를 들어주는 방식이다. 이런 구조의 책들을 꽤나 읽어 본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자면, '이야기'가 주는 힘 때문에 처음엔 흥미롭다가도, 반복되는 비슷비슷한 이야기들 때문에 뒤로 갈 수록 지루하다. 책의 내용은 사실 다음 세 줄로 요약할 수 있다.

1.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하는지, 즐기는지 스스로에 대한 자아 성찰을 해볼 것.
2. 성찰한 내용을 바탕으로 자신이 내적 동기가 이끄는 공부(일)를 할 것.
3. 인간인 이상 포기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이를 받아 들이고 꾸준함을 유지할 것.

적어 놓고 보니 뻔한 내용같으면서도 중요하다. 이 책에서 지적한 대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내적 동기'보다는 '외적 동기'에 따라 공부히고 있다. 사실 책에서 제시한 내용들은 내가 20대 초반에 우연히 겪으면서 만족스럽게 생각했던 것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권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내 방식이 권위있는 교육학자가 주장하는 방식이라는 사실에 뭔가 뿌듯함도 느꼈다. 거기다 더 보완해야할 점을 생각해보게 해주었다.

완전히 새롭게 알게 된 것은 거의 없지만, 나 자신에게 들 수 있는 의구심과 걱정을 덜어내 준 것 같아 좋았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이 평생 동안 할 일인지 고민 중인 사람에게 이 책은 그 선택의 지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0112 레옹



몇 년 전에, 교보문고에서 3000원 가량의 저가에 판매하는 DVD 명작 시리즈를 구경하다가, 레옹을 구입했었다. 최소 3-4년 전인 것 같은데, 오늘 새벽에서야 포장을 뜯고, 보게 되었다. 무슨 사연에 그렇게 미뤄 왔는지 몰라도, 레옹은 항상 언젠가 한 번 봐야지 봐야지 했던 영화였다.

역시나 명작이라 불리우는 것들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94년에 만들어진 영화임에도, 20년 후에 보는 지금에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내가 숱하게 본 '킬러 영화'들이 다 '레옹'을 뿌리로 두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까지도 든다.

"고독한 킬러가, 우연한 기회에 한 소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삶의 의미를 다시 찾게 하는 이야기.."

어쩌면 뻔한 소재다. 하지만 이것이 2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에 빗대어 보자면 하나의 패러다임 전환 급의 충격이었을 거다. 말그대로 '고전'이다. 사실 고전은 그냥 오래된 옛날의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널리, 오랜 시간 전해져야 할 만큼 훌륭한 것,'을 뜻하는 의미로서,
'레옹'은 킬러 영화의 '고전'으로서, 영원히 남을 것 같다.

여담으로, 나탈리 포트만의 어린 시절을 보며, 영화란 과거로 향하는 타임머신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인의 모습만 익숙한 사람의, 영화 속에 담겨 있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어린 시절 모습을 보는 것이 무척 색다른 경험이었다.

이번에 얼마 전에 다시 개봉했던 것 같던데, 아직도 할 지 모르겠다.
정말 영화관에서 또 보고 싶은 영화다.

2013년 4월 26일 금요일

0111 아이언맨3


마블이 시리즈들의 캐릭터를 살려 여러 가지 시리즈를 꾸준히 내놓은 덕에, 미국 코믹이 익숙치 않은 국내에서도 마블 영화들은 흥행 보증 수표로 자리 잡았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아이언맨 시리즈가 아닐까 한다. 토르나 퍼스트 어벤저의 경우는 국내 정서와 잘 맞지 않아 크게 흥행하지 못한 것 같고, 헐크 또한 식상할 수 있는 소재다 보니, 아이언맨이 견인하고 있는거다. 아이언맨은 첨단 테크놀로지로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며, 주인공인 토니 스파크는 잘 생긴 외모, 세계 최고 부자, 세계 최고의 두뇌, 그리고 쿨하고 시크한, 제 멋대로인 성격 이면의 감싸주고 싶고 보듬어 주고 싶게 만드는 매력으로 여성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실제로 작년에 '어벤저스'가 대 흥행했을 때에도 헐크와 아이언맨은 알아도 캡틴 아메리카나 토르와 로키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기억이 난다.

마블시리즈는 이제 독자적인 세계관을 잘 구축하고 기반을 잘 다져 놓은 덕분에, 새로운 시리즈를 만드는데에 큰 부담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몇 년동안 새로 오픈한 레스토랑이 돋보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면, 이제는 기존 고객들이 질리지 않게 끔 만족도를 유지시키는 것이 중요한 거다. 그런 면에서 이번 아이언맨3는 높은 합격점을 주고 싶다. 아이언맨의 캐릭터를 유지하면서도, 새롭고 신선한 소재를 고민한 흔적이 많이 보였고, 전체적인 내용 전개도 합격점을 받을 만 하다.


저마다 영화관을 찾을 때 원하는 것은 다르겠지만, 내가 아이언맨에서 기대하는 것은 단 한 가지다.

'토니 스파크의 '쿨한 삶을 지켜 보는 것


스토리의 완전성이나 군더더기 없는 내용 전개, 그런 것보다, '천재 엔지니어'라는 캐릭터가 얼마나 새롭고 멋진 것들을 만들어 냈는지, 그걸로 어떻게 악당들을 쳐부수는지, 그런걸 지켜보는 것이 좋다. 이건 '토니 스파크'라는 캐릭터이기에 가능한, 아이언맨 시리즈만이 줄 수 있는 재미이기에 나에게 아이언맨은 각별하다. 누군가에게 아이언맨은 유치한 만화 원작의 영화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게 아이언맨은 꿈을 꾸게 하는 이야기다.

2013년 4월 22일 월요일

0110 하쿠의 나무집 일기



생소한 것을 처음 공부할 때에, 어리석었던 나는 무작정 그 분야의 '고전'이라 불리울 만한 책들 부터 찾아보았다. 이 방법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선 거의 실패하기 마련이다. '고전'이라 불리우는 책은 나름의 깊이가 있기 때문에 사전지식없이 이해하기 무척 힘들기 때문이다. 그 생소한 것에 관한 '강한 열정'이 있다면, 여러 가지 첨삭을 해가며 끈기 있게 마칠 수 있긴 하다.

컴퓨터를 처음 공부할 때 이런 식으로 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분야, 이를 테면 수학이나 물리학 같은 것도 이런 식으로 접근하려고 했었다. 결과는 처참한 실패였다. 그 때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면, '단계를 밟아 나갈 줄 아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 해설서와 같은 것들에 대해 안 좋은 시각을 갖고 있었지만, '쉽다'는 것은 그만큼 흥미를 끌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흥미를 갖게 되면 고전을 읽는 것이 더 수월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이전의 교훈으로, 어떤 것을 접하든 새로운 것을 공부할 때에는 가장 쉽고 재미있게 쓰여진 것을 먼저 찾는다.

책 제목에서도 나와 있듯이, '나의 첫 회계책'이라는 이름에 걸 맞는 책이다. 시중에 '재무재표 보는 법'과 같은 수 많은 책들이 나와 있지만 별로 흥미가 생기지 않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동화책 한 권 보는 식으로, 재미있게 '재무재표'가 어떻게 현재의 모양새를 갖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재무재표의 항목이 의미하는 것은 뭔지, 더 나아가 회사의 가치를 판단하는 법에 대한 기초를 읽을 수 있게 한다.

회계는 무슨 일을 하더라도 어떻게 돌아가는 지 정도는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 생활을 막 시작하려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2013년 4월 21일 일요일

0109 프로페셔널의 조건


프로그래머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그의 블로그나, 그 블로그에 있는 프로필을 본 객관적인 잣대를 들이대자면) 한 블로거의,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책들 목록에 이 책이 있었다. 일단 제목에 끌렸으며(영어 제목을 직역하자면, '드러커표 개인들의 필수 조건들' 쯤 될텐데, 프로페셔널의 조건이라니.. 참 잘 지었다), 목차를 찾아보니 요즘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어느 정도 해답을 제시해줄 것만 같다는 생각에 다짜고짜 구입하여 읽게 되었다.

일단 이 책은 '경영/비즈니스'의 분류에 있기도 하고, '자기계발'의 분류에 있기도 하다. 그냥 애매해서 그렇게 해놨나보다 싶었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이 책의 저자가 '경영=자기계발'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 재밌었다.

얼마 전, '리딩으로 리드하라.'라는 책을 리뷰하면서 '자기 계발서'에 관하여 나 자신의 안 좋은 편견으로 살짝 드러냈었다. 솔직한 심정은, 결과적으로 '이 책 또한 별반 다르지 않으면서도 조금은 다르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 중심에는 이 책의 저자가 '세계적으로 저명한 학자'라는 또다른 편견이 깔려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되짚어 보니, 편견이라는 것은 '경영학'에 관하여 잘 모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잘 모르지만, 적어도 이 책을 읽고 나서 알게 된 경영학은, 내가 '자기 계발서'에 갖고 있던 이미지와 매우 흡사하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선택을 할까?
어떻게 하면 더 능률적일까?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대화할 수 있을까?


'자기 계발서'로 분류되어 있던 책에서 볼 수 있던 내용들.
뻔한 내용 아니냐 생각했던 것들.
사실 이것들이 '경영학'의 주제'인 것이다.


이 책에서 실천적으로 제시한 것들을 내 삶에 적용시켜볼 계획이다.
의사결정 방법이나, 피드백, 강점에 집중하라 등등.


사실 뻔한 것이면서도, 잘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사실, 이래서 경영학이라는 학문이 존재하게 된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이 떠오른다.

앎을 통해 자신의 무지와 더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2013년 4월 16일 화요일

0108 오블리비언


나는 주로 두 가지 이유로 영화관을 찾는다. 예고편이나 소재가 무척 흥미로운 경우나 잘 아는 지인들의 추천을 통해서다. 지인들의 추천에 따라 결정하는 이유는 그 사람의 흥미나 취향을 잘 알기 때문에 그 사람이 좋아한다면 나도 좋아할 수 있을거란 생각 때문이다.

후자를 통해 영화관을 찾게 될 경우, 나는 최대한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없이 간다. 영화를 즐기는 입장에서 기대나 편견없이 가야 더 즐거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영화도 추천을 통해, 하지만 사전 정보없이 보러 갔다.

그럭저럭 재밌게 봤다. 하지만 최고다 싶을 정도는 아니였다. 뭔가 여러 영화를 짜집기한 느낌이랄까. 영화가 끝나자, 옆 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가 돈 아깝다고 하는 말이 들렸다. 사실 돈 아까울 정도는 아닌데, 그 남자는 내가 본 영화들-이 영화가 짜집기 했다고 느끼게 끔 만든-을 다 보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화끈한 SF액션을 기대하고 보게 됬는데 액션이 별로 없어서 그랬던 걸까? 개인적으로 그는 '후자'였을 것 같다.

오블리비언은 꽤나 생소한 단어인데, '망각'이라는 뜻이다. SF, 미래적인 분위기의 액션 영화의 겉 모습을 풍기고 있는 이 영화는 사실 SF 소재를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영화의 '메시지' 때문에 갖게 된 것일 뿐이다. 영화 제목도 '망각'아닌가.


"[기억]과 [존재]에 대한 질문."


내가 볼 땐 이것이 영화 전체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애초에 화끈한 SF 액션 영화가 아닌거다. 만일 매트릭스, 메멘토 등등 기억과 인간 복제, 가상현실을 다룬 영화들을 보지 않았다면 엄청나게 즐겁고 신선한 자극이 되었을 것 같지만, 이미 이전 영화들에서 다 했던 이야기들이라는게 문제다. 그 영화들과의 차별화를 '멋진 미래적,  SF 요소'로 둔 것 같은데, 사실 '멋진 미래적 SF요소'는 그 요소를 잘 살릴 수 있는 액션 영화에나 어울리지 않겠는가. 내 옆자리의 남자는 분명 이 괴리에서 돈이 아깝다고 느낀 것 같다.


전체적으로는 좋은 영화다. 이미 너무 많은 영화가 제작되어, 더 이상 신선할 수 없는 한계에 접어든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오블리비언은 분명 좋은 소재에 괜찮은 내용인 것은 분명하다.

'선조의 유산과 뜻을 기리기 위해 죽는 것이 가장 훌륭한 죽음이다.'

영화 속에서 주요한 메시지로 등장하는 대사인데, 혹시 오블리비언이 매트릭스를 기리기 위해 탄생한 건 아닐지, 라는 생각을 해본다.

2013년 4월 15일 월요일

0107 셔터 아일랜드


솔직히 말하자면 이 영화를 보기 전엔 이런 걸 기대하지 않았다. "고립된 정신병동 섬의 이야기"에서 내가 기대한 것이 뭐 였을까? 명확히 뭐라 이야기하기 어렵겠지만, 분명 흔한 반전 영화적 전개-주인공 시점에서 쭉 따라가다가 알고 봤더니 주인공이 귀신이거나, 정신병이거나 하는 등의-는 아니었다. 때문에 다 보고 나서 좋았다..라는 느낌이 많이 없다.

이런 식의 내용 전개는 사실 수 많은 반전 영화에서 쓰였기 때문에,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영화에 숨겨진 상징을 쫒으려 애쓰기 시작했다. 주인공들이 비를 쫄딱 맞고 그 섬에서 생활하는 사람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다니기 시작하는 모습이나, 폭풍우 속의 절벽을 오르 내리는 상식 밖의 행동, 절벽에 가득한 쥐 떼. 등등. '광과민성'이라며 계속 눈부셔 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빛을 통해 뭔가를 보지만, 그 빛이 과하면 또 아무 것도 볼 수 없다.' 와 같은 메시지를 주고자 했던 것일까?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헛 것이 보이는 환각 장면과 피를 흘리는 장면들, 알 수 없는 화려한 효과들은 지나치게 상징적이어서, 영화를 즐기기 보단 그런 것들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영화에 잘 몰입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이런 식의 영화에서 잘 쓰는 '열린 결말' 장치를 쓰고 있는 듯 하다. 주인공이 진짜 정신병인지, 정신병으로 몰아가는 건지, 두 가지 모두에 힌트를 줌으로써, 원하는 대로 해석하세요.라고 말하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은 이 영화의 메시지의 메타(meta)성이다. 영화는 '내가 정신병인지, 주변에서 나를 정신병으로 몰아가는 것인지' 고뇌하게 되는 주인공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주인공이 정신병인지, 주변 환경이 주인공을 정신병으로 몰아가는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을 관객에 제공한다.  여기서 만일 내가 스스로 영화를 '주인공이 정신병일 거야'라고 해석했다고 하자. 그런데 함께 영화를 본 친구들이 모두 '아니야 주변에서 몰아가는 거지 주인공은 정상일껄.'라고 주장한다면, 적어도 그 집단 내에서는 그런거다.

그렇다. 이 영화는 내용적으로나 관객에게까지 'What Is Normal?'라 묻고 있는거다. 감독의 의도한건진 모르겠지만, 뭐 이런식으로 해석해볼 수도 있겠다는 거다. 영화 자체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점이 더 흥미로웠다.


영화 속에서 드러나는 상징성을 찾기를 좋아하면 더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엄청 재밌다고 강하게 추천하긴 어려울 듯 하다..

0106 the social network - bonus disk


영화 the social network의 리뷰는 예전에 남긴 적이 있다. 이 영화는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이 돌려본 영화다. 영화를 하나만 봐야한다면 이 영화를 꼽을거다. 그만큼 봐도봐도 질리지 않는다. DVD를 구입해서 한 번보고 넣어 놓은 것이 아니기에, 이 DVD는 정말 아깝지 않다.

DVD를 구입하면 간혹 Bonus Disk가 함께 들어 있다. Making Film이나 배우들의 인터뷰, 제작 과정같은 것들이 들어있곤 하는데, 사실 난 이런 종류의 영상을 제대로 본적이 한 번도 없다. 지난 밤에 문득 생각이 나서 이 DVD를 꺼내 들었는데, 새로운 걸 한 번 보자는 마음으로 이 Bonus Disk를 틀게 되었다.

영화의 제작과정이 정말 상세하게 나와 있다.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감독이 어떤 식으로 작업하는 지 알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내 일에 대한 마음 가짐도 다 잡을 수 있었다. 영화를 만들 때,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의 작업 과정, Making Film을 지켜 보며, 느낀 교훈이 많다.

1. 철저한 목표 설정. 이 이야기를 만들 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목표 설정에 엄청난 시간을 들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인공들의 인물 상, 이야기의 구조,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를 연기하는 배우와 감독, 각본가가 모여서 몇 시간씩 토론하면서 '더 나은 세계와 인물'을 만들어 나간다. 막무가내 식으로 작업하던 스스로를 반성할 수 있었다.

2. 완벽할 수는 없다. 하지만 완벽에 가깝게 한다. 이를 위해 그가 하는 것은 99회의 take다. 영화 계에서는 그의 99 take가 꽤나 악명 높은 것 같다. 어찌 한 두번에 완벽하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때문에 그는 99번의 take(100번은 넘기지 않는단다ㅋㅋ)를 통해 한 번 한 번의 take에 부담을 줄이면서도 완벽에 가깝게 원하는 것을 얻어 낸다. 실제로 the social network에는 장면과 배우의 표정이 마음에 드는 부분과, 배우의 단어 발음이나 사운드가 마음에 드는 부분이 달라서 두 개를 짜집기 한 장면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개발 과정에서 빠르게 제작하고 실제로 플레이해보는 프로토타입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하는 데, 창조라는 맥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날 하늘에서 좋은 것이 뚝 떨어지는 것은 드물기 때문에, 많은 시도를 거쳐야 하는 것이다.

3.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만들기. 눈 앞의 것에 현혹되면 본질을 잃기 쉽다. 지난 1년 가까운 시간을 돌이켜 보면 후회도 많이 되지만, 앞으로의 삶에서 정말 잊지 말아야 할 것을 배웠다. '다른 사람이 좋아할만한 것'을 만드는 것은 결국 내가 만드는 것이 돈 벌이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을 잊었다. 내가 프로그래밍을 업으로 삼기로 마음 먹은 것은 단지 그것이 즐겁고 즐길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데이빗 핀처 감독의 일을 보니 알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좋아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만드는 것.

창조자의 마음가짐이른 모름지기 이래야만 하는 것이라는 걸 느꼈다. 아직 어리기에 수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배우는 거라 생각하자.


우연히 본 Bonus Disc에서 많은 것을 얻고 간다. 영상과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한 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전문가들이 혼신의 힘을 다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내 혼신의 힘을 어떻게 쏟아야 할 지도. 어떤 영화든, DVD에 Making Film같은 것들이 있다면 한 번쯤은 꼭 보길 추천한다.

2013년 4월 14일 일요일

0105 장고:분노의 추적자



예고편을 보고 개봉하면 꼭 보리라, 마음먹었다. 영화관에 갈 기회가 자주 없어 미루고 미루다가 상영관에서 내려올 것 같아 부랴부랴 혼자서 보러 갔다. 이렇게 안 갔으면 정말 후회할 뻔 했다.

장고는 완성형 서부극이다. 최근 마케팅에 관한 책이나 글들을 많이 읽게 되는데, 모든 비지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니즈와 그를 충족시켜줄 솔루션이라 했다. 장고를 완성형 서부극이라 부른 이유는, 이 영화를 보러올 모든 사람들의 니즈를 완벽하게 충족시켜줄 솔루션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가장 좋아하는 액션 영화로 '테이큰'을 꼽곤 한다. 군더더기 없는 총격전이 정말 매력적이기에 그랬다. 장고는 서부극을 무대로 '테이큰'과 같은 총격전을 보여주는데, 이것이 정말 짜릿하다. 허리춤에서 순간적으로 총을 뽑으며 총을 쏘는 짜릿함을 그 무엇이 대신할 수 있으랴.

장고에는 복잡한 스토리는 없다. 스토리는 보는 내내 모두 예상가능하다. 하지만 그 예상되는 스토리가 눈 앞에 펼쳐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입이 떡 벌어진다. 말 그대로, 남자의 로망을 자극한다. 복잡한 메시지를 담으려 했다거나 기발한 액션을 집어 넣으려 했다거나, 뭐 그런 군더더기가 없다. 그래서 완성형이다.

한 가지 더 언급하자면, 내 지론에 맞게 여기서도 주인공들이 참 매력적인 캐릭터로 나온다. 닥터 슐츠의 '삼총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 불의에 분노를 못 참는 그의 모습은 진짜 남자 그 자체였다.


가끔 리뷰가 아니라 예찬이 되곤 하는 때가 있는데, 이 영화가 그렇다. 허허.

2013년 4월 10일 수요일

0104 리딩으로 리드하라


추천으로 읽게 된 이 책은 소위 말하는 '자기 계발서'다. '계발'은 사전에 "슬기나 재능, 사상 따위를 일깨워 줌"이라는 말로 정의되어 있다. 책을 읽음으로써 뭔가 새로운 정보나 이야기를 전달하기보다는 책 내용을 통해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책인 셈이다.

'자기 계발서'를 몇 권 읽어보고는, '저는 자기 계발서는 잘 안 읽어요'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 계발서'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주로 하는 이야기는 한 줄로 요약된다.

"말로는 누가 못 하냐?"

사실 내가 느끼는 것도 그렇다. 한 번 자기 계발서를 써볼까?

매일 7시에 일어나서 1시간 씩 명상을 하고 작은 시간 5분 10분의 자투리시간을 활용하며, 눈을 마주치며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대화에 임하고, 상대방에 집중하면서 경청하고.. 등등등 하면 더 행복하고 더 성공적인 삶을 살겁니다.


그렇다. 솔직해지자. 우리는 다 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해 뭘 해야할지는 이미 다 알고 있다. 다만, 눈 앞의 욕망에 번번히 싸워서 질 따름인 것이다. 대부분의 '자기 계발서'에 나오는 내용들은 긴 시간을 갖고 '습관화'하는 것이 핵심이지만, 우리에겐 그럴만한 꾸준함이 없다.

습관화 시키는 것은 무척 어렵다. 뇌의 메커니즘 상 그러하다. 뇌는 안정되어 있는 상태를 원하기 때문에, 자꾸 새로운 시도를 하려 하면 불편해진다. 우리가 공부를 싫어할 수 밖에 없는 본질적인 이유다. 습관을 고치기 힘든, 새로운 습관을 만들기 힘든 본질적인 이유다. 때문에 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선, 어떤 방법이든 '지속적인 동기유발'을 하는 것이 무척이나 중요한 거다. 사실 내가 '자기 계발서'를 읽을 때 얻고자 하는 것은 이 '동기 유발'이다. 길든 짧든 간에.

'리딩으로 리드하라'도 사실 상 '본질'은 비슷하다. 다만 포장된 것에서 흥미를 느꼈다. 다짜고짜 '인문고전을 읽으라'니. 저자는 '고전을 읽은 천재들'의 레퍼런스를 수도 없이 찾아 낸다. 정말 천재들이 인문 고전을 읽었기 때문에 천재가 된 건지에 대한 인과관계에 따른 엄밀한 검증은 없다.

인문 고전이 두뇌를 변화시킨다는데, 이에 대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설명 또한 없다. 뭔가에 느낌 정도로만 설명한다. '그게 뭔데?'라 할만 하다. 다만 개인적으로서는 뭔지에 대한 느낌은 알 것 같긴하다. 철학책에서 이해 안되는 구절을 읽고 읽고 또 읽다가 뭔가 깨달음이 왔을 때의 느낌. 철학 전공자로서, 다른 분야의 사람은 느끼지 못할 그 느낌일 거라 생각하니 더 생생하게 알고 있는데, 저자는 그 느낌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 밖에 책의 논리적 구조에 대한 문제점들이 많이 눈에 띄지만 생각해보면 이건 문제점이 아니다. 오히려 잘 된 점일 수도 있다. 이 책은 '자기 계발서'다. 저자가 주장하는 바에 대한 엄밀한 검증에 지면을 낭비하는 것보다는 유명 인사들의 이름을 대면서 '두뇌에 직접적인 변화를 준다.'와 같은 식의 멘트로 오늘부터 당장 변화하도록 동기를 유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이 책에서 얻은 것은 The Art of Computer Programming이라는 컴퓨터의 전설적인 고전이라고 불리우는 책에 대한 동기 유발이다. 인문고전은 아니지만, 역사가 길지 않은 컴퓨터 공학에서 이 책은 현재 과학서 분류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전설적인 고전이다. 한 때 빌게이츠가 '이 책을 다 읽고 이해한 사람은 내게 이력서를 보내세요.'라는 말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책은 읽기가 너무 어렵다보니, 프로그래머들 사이에서, '보유하였지만 안 읽은 책 1위'이기도 하다. '당장 신 기술이 난무하는 마당에 오랜 시간을 들여  고전 컴퓨터 동작 알고리즘 공부나 하고 있을 틈이 있냐'며 미뤄 왔었다만, 이 책을 읽고 보니 제일 먼저 읽고 싶어진 책이 되었다.

별로 쓸 말이 없을 것 같았는데, 쓰다보니 꽤나 길어졌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다. '자기 계발서'에서 얻는 것이 '책 자체의 내용'이 아닌 '동기'라고 생각하면, '자기 계발서'는 꽤나 읽을 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