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31일 월요일

0072 19곰 테드


유쾌하게 보기 좋다기에 VOD가 뜨자마자 봤다. 꽤 즐겁게 봤다. 주인공의 간절한 소원으로 인격을 갖게 된 곰 인형과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로멘틱 블랙 코메디의 전형이랄까. 여기서 블랙이 들어간 이유는 나오는 소재가 꽤나 자극적인 것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노골적으로 나오진 않지만)

늘 하는 이야기지만, 뭔가를 '일관성 있게 의인화'시키는 것은 참 재밌는 일인 것 같다. 그것이 독특할 수록 좋으며, 기대와 다른 인격을 갖게 된다면 더 재밌다. 테드가 그렇다.

곰돌이 인형인 테드는 일자리도 갖고, 여자친구도 있으며, 술도 마신다. 곰돌이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인격은 딱 놀기 좋아하는 약간 불량한 성인 남성이다. 곰돌이의 모습을 하고 그런 행동을 하는 테드를 보고 있으면 참 재밌다. 거기에 일관성있게 의인화된 부분도 재밌다. 다치면 솜뭉치가 삐져나오고, 그를 수술하기 위해 바느질을 하는 등의 테드가 '곰돌이'임을 이용한 공감대 형성 또한 테드를 더욱 재미있는 캐릭터로 만들어 준다.

이 영화를 치밀한 스토리 구성이나 잘짜여진 설정같은 걸로 보려는 사람은 없겠지.
겉모습만큼 만족스러운 영화다.

0071 Hero Academy



최근에 읽은 책에서 꽤나 감명깊은 구절이 있다. '우아한 게임'에 관한 정의 였다. 우아한 게임이란 '단순한 행동(규칙)으로 다양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한다. '우아한 게임'의 대표적은 예는 체스다. 체스는 정말 단순한 말들의 이동 규칙만 익히면 끝 없는 전략이 펼쳐진다.

Hero Academy는 개인적으로 '캐주얼 체스' 정도로 평가했다. 체스보다 더 우아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요즘 트랜드에 맞게 적절히 룰을 변형 시킨, 체스같은 방식의 턴 전략 게임이다. 트랜드에 맞추다 보니 룰은 조금 더 복잡해진 감이 없지 않지만, 좀 더 게임 자체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게임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보지면, 각기 다른 테마를 가진 팀을 골라 다른 플레이어와 멀티플레이로 대전하는 게임이다. 각각의 팀에는 팀 특성, 근접, 원거리, 마법사, 치료사, 영웅 유닛 등과 몇 가지 마법이 있으며, 이들이 각기 조금씩 다르다. 위 스크린샷과 같이 좁은 맵의 몇 가지 지형 오브젝트가 있으며, 이들이 중요한 거점이 되기 때문에 이들을 중심으로 전략이 펼쳐진다.

각 턴에는 5번의 행동을 할 수 있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턴의 무슨 행동을 하더라도 하나의 턴을 소모한다. 새로운 유닛을 배치하거나, 이동하거나, 공격하거나 마법을 쓰거나 등등.

글로 설명하다보니 조금 복잡해보이지만, 몇 번만 해보면 금방 익숙해진다.

사실, 이 정도였으면 굳이 리뷰를 쓰지 않았겠지만, 이 게임의 리뷰를 쓴 진짜 이유는 '비동기식' 멀티플레이를 훌륭하게 구현해냈기 때문이다. 내 턴을 마치고 나면 상대방이 턴을 끝낼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는 방식이 아니다. 내 턴 동안의 5번의 행동이 서버로 전송되고, 상대방은 그것을 전송받는다. 나는 그동안 다른 대전게임의 내 차례 턴을 수행하거나 다른 볼일을 보다가, 상대방의 턴이 끝났다는 알림을 받으면 다시 게임으로 돌아와 상대방이 행동을 확인하고 내 턴을 수행한다.

턴 방식 게임 + 멀티플레이의 고질적인 문제인 '상대방 턴을 기다리는 시간'과 모바일 플랫폼의 특성 상 오랜 시간 붙들고 있을 수 없다는 문제를 아주 깔끔하게 해결해냈다. 진득하게 플레이하는 전략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만한 것이 또 있을까?

정말 이 비동기식 멀티플레이 방식에 신선한 충격을 받고 꽤 플레이했지만 지금에는 큰 단점을 발견하여 잘 손이 안 간다. 서로 짧은 시간에 턴을 주고 받는 흐름이 끊기기 시작하면 한 게임에 몇 일씩 계속 질질 끌면서 이어지는데, 이것이 상당한 지루함을 준다. 진득하게 전략을 짜는 것도 좋지만 결과가 언제 날지 보이지 않는 전쟁 게임을 누가 하겠는가.

비록 큰 단점이 되기도 했지만, 이 '비동기식 멀티플레이'는 꽤나 획기적이었고, 언젠가 이를 응용하면 좋은 대전게임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전략게임을 좋아한다면, 분명 즐겁게 할 수 있을 것이다.


0070 Portal



70편의 리뷰를 써 오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훌륭하다'라고 평가받는 것들을 잘 기억해놨다가 언젠가 나중에 꼭 해본다는 것이다. 이번 리뷰의 'portal' 또한 그러하다. 획기적인 게임 방식으로 극찬받은 이 게임의 1-2의 합본을 요번 크리마스 세일로 저렴하게 구입가능한 것을 보고 단 번에 질렀다. 그리고 바로 1탄을 플레이 했다.

난 종종 이런 훌륭한 게임을 잡으면 자체적으로 '켠 김에 왕까지'를 한다. 짧은 플레이타임으로도 유명하다더니, 3-4시간만에 다 깨버렸다. 엔딩을 보면서 예전에 리뷰를 올렸던 게임 warp가 떠올랐다. '켠 김에 왕까지'를 한 점이나, 공간을 주제로 한 퍼즐이라는 점에서 무척 다른 모습이지만 비슷함을 느꼈다.

Portal은 제목에서와 같이 특정한 벽에 포탈을 설치할 수 있는 총을 갖고 진행해 나가는 게임이다. 파란색과 주황색 두 가지 포탈을 설치하면 둘은 서로 연결된다. 몇 가지 장애물과 더불어, 포탈을 통해 '중력'을 잘 이용하여 스테이지를 클리어해야하는 방식이다.

'공간이 연결된다.'는 어찌보면 단순한 한 문장으로 정말 새로운 경험을 안겨준다. 게임의 우아함이란 이런 것이라고 보여주는 것 같다. 사실 이건 게임이라기보다 현대 예술 작품에 가깝다는 생각까지 든다. 나름의 스토리는 역시 밸브 답다는 생각의 스토리이다. 하드모드와 2탄은 아직 플레이하지 않았지만, 이런 식의 아이디어를 써서 퍼즐을 풀기 좋아하는 나같은 도전 유형의 게이머라면 이 게임은 사랑스럽기까지 할 것이다.

게임을 끝내고 재밌는 것을 발견했는데, 바로 '개발자 커멘터리 모드'다. 간단히 플레이해보았는데 나같은 인디 개발자에겐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현재의 레벨 디자인이 왜 이렇게 되어있고 어떤 의도를 갖고 플레이어가 뭘 경험하길 바랬는지에 대한 디자이너의 코멘트가 나와있다. 거기에 코멘트를 피드백받기 위해 탑재된 이 모드는 정말 순수하게 '좋은 게임을 만들겠다.'는 그들의 의지가 충분히 담겨있어 두 번 감동 받았다.


공간이 연결되는 경험, 함께 해보자.

2012년 12월 24일 월요일

0069 용의자 X의 헌신


얼마 전 한국판, '용의자 X'를 보고 리뷰를 남겼었다. 매력적인 스토리 때문이었을까? 좀처럼 같은 이야기를 두 번보진 않지만, '원작'이 궁금해졌다. 같은 이야기를 다룬 서로 다른 영화의 서로 다른 영화는 어떻게 다를까? 라는 궁금증까지 더 해져 보게 됐다.

스릴러 영화에서 스토리를 알고 있는 것은 큰 단점이 된다. 스릴러에서 중요한 '스릴'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처음 볼 때 놓쳤던 세세한 복선, 여러 가지 장치들, 사소한 것들의 의미를 알아챌 수 있다. 처음 보면서 놓치기 쉬웠던 깨알같은 재미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일단 같은 이야기 틀을 가지고 있지만 일본판은 한국판보다는 등장인물 구조가 좀 더 복잡하다. 원작 소설에 충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판에서 이에 대해 신경을 쓴 것 같다. 원작의 복잡한 인물관계에서, 여러 인물을 하나의 인물로 합쳐서 2시간짜리 영화에 맞는 인물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확실히 전에 지적한 '문화'라는 측면에서 원작이 더 자연스럽고 적절하게 느껴진다. 일본 이야기 특유의 '캐릭터성'을 잘 살리는 점 또한 원작과 비교해 이색적으로 보였다.(영화 첫 장면을 통해서 '유카와'라는 캐릭터는 확실히 일본의 이야기 특유의 방식대로 캐릭터성을 얻게 된다.)

'눈물을 자아내는 연출'에 있어서 한국 영화의 수준이 확실히 높다는 느낌을 받게 했다. 같은 장면을 만들었음에도 훨씬 뛰어나게 느껴졌다.

같은 이야기, 다른 영화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뭔가 색다르고 재밌었다.
사실 둘 중에 뭘 보라, 추천하진 못할 것 같다. 둘 다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0068 더 콜러



과거에서 걸려온 전화, 그 전화를 건 사람이 과거의 어린 시절의 '나'를 괴롭히고, 그 영향이 현재의 나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더 콜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타임머신이 있어야만 할 것 같은 '시간 여행'요소를 공포영화와 결합시킴으로써 새로운 종류의 공포를 만들어낸 참신한 영화다.

우연히 보게 된 이 영화는 사실 처음엔 지루함을 많이 느꼈다. 전개가 너무 느리고, 의도적으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려고 한 흔적이 너무 많이 보였다. 조명은 시종일관 어두우며, 잘 이해가 하지 않는 카메라 무빙은 특히나 초반부에 몰입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본격적인 이 영화의 소재, 과거의 사람이 과거의 나를 괴롭히며 현재를 변화시키는,가 본격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하면서 부터는 정말 긴박하다. 시공간의 흐름이 다르기 때문에 도망칠 수 없다는 점은 정말 무서운 공포를 자아 낸다.


시간 여행과 공포영화를 적절히 조합시켜 새로운 창의성을 만들어낸 이 영화. 연출이 조금 아쉽지만 '새로움'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영화다.

2012년 12월 21일 금요일

0067 그리스 로마 신화


작년 여름에 그리스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솔직히 나는 신화나 역사에 관심이 별로 없었다. 이번 기회에, 같은 유적지를 좀 더 유익하게 경험하고자 이 책을 읽고 여행을 가기로 마음 먹고 구입하였다. 하지만 당시엔 600페이지 가량되는 이 책을 결국은 앞 부분만 조금 끄적이다 말았다.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그리스 여행 때문이 아니더라도, 수 많은 판타지 컨텐츠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것이 이 그리스 로마 신화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꼭 전체를 다 읽으리라 다짐하며 이 책을 가까운 곳에 꽂아 두었다.

이제서야 다 읽게 된 것은, 사실 이 책이 그리 재밌지 않았기 때문이 가장 크다. 너무 재미있는 컨텐츠들이 많은 요즘 세상에 역치가 높아져서 일까? 1800년 대에 미국에서 발매된 이 책은 당시에 베스트 셀러로, 대중들의 교양 수준을 높이는데 일조했다고 하지만, 솔직히 나는 재미있게 읽진 못했다.

방대한 신화를 한 권에 담으려다 보니, 저자는 신화 이야기를 '사실을 서술하는 방식'으로 담아 냈다. 이것이 굉장히 흥미로운 소재를 재미없게 만드는 큰 원인이 되었다.

수 많은 신과 요정들, 혹은 그 아들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사실을 서술하는 방식으로 나열되다 보니 이야기에 전혀 몰입되지 않았다. 너무 많은 등장인물들과 그 인물들의 이름 조차도 어렵고 익숙치 않다보니 누가 누구였는지 헷깔려 계속 페이지를 되돌아가기 일쑤였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해당 신화를 묘사한 멋지게 인쇄된 명화들이었다. 상상 속에 인물들이 멋지게 표현되어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지루한 이야기 전개에 한 줄기 희망을 가져다 주었다.

나는 사실 책을 보다 마는 짓을 잘 못 한다. 책을 그 내용 자체에 대한 흥미로 읽는 것이 가장 첫 번째지만 '다 읽었다'는 만족감 또한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꽤 나쁜 습관일 수 있는게, 한 번 잘못 책을 만나면 그 책이 끝 날 때까지 독서효율이 엄청 떨어진다. 이 책 또한 그런 책 중 하나 였고, 대강대강 글씨만 읽고 지나간 부분이 꽤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끝까지 읽은 이유는, 이보다 더 좋은 책이 없을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좋지 못한 이야기의 특징'들을 이 책이 갖게 된 이유는 저자가 못나서가 아니라, 신화라는 특성 상 그럴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 다양한 컨텐츠에서 사용된 소재들이나, 신화 자체의 기발한 상상력들을 읽고, 그것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지 못했더라도, 있다는 것 정도만 알아두는 것만으로 의미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나중에라도 신화에 대한 기초 레퍼런스북으로 사용될 수 있을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화를 소재로 사용한 다양한 컨텐츠를 접했을 것이다. 하지만 체계적으로 누가 누구랑 어떤 연관이 있고, 어떤 연고에 그렇게 행동했는지를 큰 줄기에 따라 이해하진 못했을 것이다. 이 리뷰에서 내내 재미없다는 말만 늘어놨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특히 뭔가 '창작, 창조'해야하는 일을 할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읽어볼 가치가 있을 것 같다.

2012년 12월 19일 수요일

0066 은교



오늘 하루만 무료라는 hoppin 광고가 날라왔다. 투표일을 기념하여 하는 행사같은데, 마침 은교는 보지 못했으나 보고 싶었던 영화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보게 됐다.

사회 이슈 중 하나인 아청법 논란에서 반론의 소재로 꼭 나오는 '은교'인 만큼 여고생을 주제로 한 외설젹인 묘사가 꽤 있다. 더불어 이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꽤나 주목을 받았기 때문에 꽤 많은 주변들이 이 영화를 보고 평에 대해 이야기 해주던 기억이 났다. 주변 지인들은 '야하기만 하고 그냥 그렇다' 정도의 평이었다.

하지만, 내 관점, 내 취향에서 은교는 최근에 봤던 정말 최고의 드라마 영화로 손꼽을 수 있을 정도로 좋게 봤다.

시간, 사랑, 성공

삶을 세 단어로 요약하면 저것들이 아닐까. 때문에 이 세 가지는 어느 이야기에서나 나올 수 밖에 없고 생각한다. 은교는 이 세 가지가 적절하게 어우러져 정말 우아하게 복합적인 갈등을 만들어 냈다. 어떻게 단 세 명의 인물 만으로 이런 관계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라는 놀라움이 너무나도 크게 작용했다.

여기에 더불어, 매력적인 캐릭터들과(특히 은교 역의 김고은 씨는 정말 매력적이다..) 멋진 장면 연출(박해일이 숨어서 은교를 지켜보는 장면들은 정말 일품이다.) 깔끔한 스토리 전개와 적절한 순간에 밝혀지는 이야기의 내막 등은 흠잡기 힘들 정도로 정말 좋았다.

더 이상의 말이 필요없다.
정말 좋은 영화를 놓칠 뻔 했으나 무료로 보게 해준 hoppin에 감사하며..

2012년 12월 18일 화요일

0065 Arms


어렸을 적에 재미있게 보다 말았었던 만화. 팔에 부착된 엄청난 힘을 갖게 된 주인공에 얽힌 이야기. 내 기억으로는 재미있는 소재의 소년 만화,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재미있는 소재의 결말이 궁금해졌기에 이제와서 (10년 만에) 다시 읽게 되었는데, 이거 참, 얼마 전에 읽었던 기생수 정도되는 놀라움을 느꼈다. 기생수의 리뷰에서도, 크고 나서 식견이 넓어짐에 따라 내용이 다르게 이해되기 시작했다는 언급이 있었는데 본작 또한 그러하다.

사실 이 만화를 다시 읽기 시작했을 때, 이 만화의 초반부는 내 기억 그대로 였다. 흔한 일본의 소년 만화처럼, 고교생인 주인공이 알 수 없는 힘을 갖게 되어 성장하게 되는 스토리. 거기에 좀 어리숙해보이는 이야기 진행은 그냥 시간 떼우기로 적합한 소년만화의 이미지를 갖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만화를 진행해 나갈 수록 작가가 이 이야기를 처음 그리기 시작했을 때 부터 찬찬한 스토리 기반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의 토대는 나름대로 탄탄하다. 나름의 세계관을 만들어 주어 이야기 속 세계에 좀 더 애착을 갖게 하며, 암즈만의 독특함을 갖게 한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를 새로운 이야기의 토대로 삼는 것은 꽤나 좋은 도구라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물론 우아하게 연결할 장치를 만들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원작의 이야기를 다르게 해석함으로써 익숙함 속의 새로움을 줄 수 있으며, 원작 이야기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이야기 전개는 이야기의 탄탄함을 만들어 준다.

SF물로서 나름의 과학적 설명을 하려는 시도는 이야기를 그럴 듯하게 만들어 준다. 이 이야기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등장 인물들의 변화다. 매력적인 악당이 나오는가 싶다가도 아군이 되기도 하며, 가치관에 따라 시시각각 바뀌는 대립관계는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한다. 주인공들 또한 불안 요소를 항상 안고 있어 괴물이 되기도 하는 점 또한 이야기를 조마조마하면서 따라가게 한다.

처음 읽기 시작할 때보다 훨씬 만족스러운 내용이었다. 전체적으로 내용 전개가 깔끔하진 않지만(군더더기는 조금 있는 편이다.) 단순히 싸우는 내용 이상의 소년만화다.


2012년 12월 13일 목요일

0064 The Art of Game Design



작년 봄 학기 때 학교에서 인문대생 취업역량 강화를 위한 수행인문학 전공 제도의 '게임 기획과 분석'이라는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서강대학교 게임교육원 교수님이 오셔서 강의를 해주셨는데, 당시 나는 막 iOS api를 만져 보고 실험해보며 게임 어플 제작을 꿈꾸던 상황이었다.

그 때 그 교수님이 이 책은 게임 개발자에게 바이블과 같은 책이니 만약 게임 개발에 정말 관심이 있다면 무조건 한 권쯤은 구입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당시엔 구입해놓고 깨작깨작 읽다 말았던 기억이 났다. '기획'의 중요성보다 프로그램을 짜는 것이 더 중요한 당면과제였기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른다.

요새는 '기획'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고 있다. 게임을 만들다 자주 막히게 되었는데, 그 원인이 모두 처음부터 치밀한 기획없이 덕지덕지 붙여 누더기 옷을 만들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자각했다. 그래서 기초를 다지자는 마음으로, 개발의 슬럼프를 극복하고자 이 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

이 블로그에도 '게임의 재미'에 관한 책, 기획에 관한, 디자인에 관한 책을 읽고 남겨 놓은 리뷰가 꽤 있다. 그 만큼 '어떤 것이 재미있는지'가 궁금했기 때문에 그런 책들을 읽어 본 것이다. 그 중에서도 이번에 읽은 이 책이 단연 압권이었다.

사실 '재미있는 것'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 무척 힘들다. 그래서 이전에 읽은 책들은 대부분 '어떤 것이 재미있는지'에 관한 설명을 주로 하곤 했다. '짝 맞추기', '관리하기',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 책에선 '게임이 뭔지'에 대한 저자 나름대로의 정의를 하면서 논지를 발전시켜나가는데 이것이 굉장히 재밌다.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경험을 만들어주는 것'이라는 정의. 생각지도 못했던 정의다. 하지만 저자의 부연 설명이 참 그럴싸 하다. 우리의 기억과 경험은 단편화되어 남는다는 말을 들어본 적있는가? 가령, 오늘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는 기억 속에는 다양한 사건들이 있다. 카페까지 걸어갔는지, 카페에서 화장실은 몇 번 갔는지, 맞은 편 사람이 너무 시끄럽게 떠들지는 않았는지. 등등, 하지만 우리는 인상적이었던 주요 경험만을 기억에 남기며, 자신의 관점에서 중요하다고 느꼈던 것만 경험으로 남는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행위 역시 이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FPS게임에서 우리는 단지 마우스를 움직이며 클릭하는 행동을 하고 있지만, '총 쏘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식이다.


좋은 게임을 만들기 위한 무척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경험을 만들어준다'는 이 정의는 무척 와닿았고, 내 게임의 기획에도 적절히 반영시켜야 함을 느꼈다.

앞의 교수님과 같이, 게임 개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2012년 12월 8일 토요일

0063 God Of Blades



이 게임이 app store 상위권에 처음 나타났을 때, 난 그리 큰 관심이 가지 않았다. 일단 그래픽이 너무 구시대적으로 느껴졌으며, 화면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사진을 타이틀 화면으로 걸지 않은 이유다) 딱 봐도 지겨운 횡스크롤 액션 게임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어느날 이 게임이 0.99달러로 세일을 하면서 app store 최상위권까지 올라갔다. 그제서야 어떤 게임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고(이럴 때 보면, 난 고집있는 듯 하면서도 의외로 팔랑귀의 기질이 있는 것 같다고 느낀다.) 1달러를 투자해보기로 했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새벽에 다운을 받았는데 아침에 해뜨는 걸 보게 되었다. 무엇이 날 이렇게 만들었을까 고민해보고 분석해보지 않을 수 없다.

좋은 게임의 조건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이전의 게임 리뷰에서도 수도 없이 해왔던 말 일지도 모르지만) "배우긴 쉽고, 마스터하긴 어려운 게임". 이 게임은 이 말에 놀랍도록 충실하다. "칼 싸움"의 경험을 가위바위보 식의 선택지(가로베기, 올려베기, 내려베기, 막기)만으로 만들어 냈다. 엄청나게 찰진 타격감과 수준 높은 AI로, 타이밍 맞춰 4가지 동작 중 한 가지를 지속적으로 입력해주는 것만으로도 '칼싸움'의 경험을 느끼게 해준다.

이런 단순함 속의 다양함이 바로 '다양한 칼의 수집과, 그에 따른 칼의 특수능력'이다. 다채로운 디자인의 칼은 이 게임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칼의 무게에 따라 동작의 빠르기와 줄 수 있는 파괴력이 달라지며, 일정시간마다 쓸 수 있는 특수능력은 게임이 지루하지 않도록 한다. 이에 수집욕이 더 해져 이 단순한 칼싸움을 계속하게 만든다.

게임 시스템 적인 것은 재밌는 게임의 핵심적인 것을 잘 수용한 느낌이다. 하지만 이 게임이 해외에서 정말 고평가받는 이유는 바로 아트웍과 스토리텔링이다. 이 글 서두에 조악하고 구시대적인 그래픽으로 보여 흥미를 끌지 못했다는 부분이 보이지만, 사실 이 그래픽은 이야기나 세계관에 무척 잘 어울리는 그래픽이었다.

너무 어려운 고어들이 난무하는 바람에 영어 스토리를 제대로 해석내지 않고 바로 스킵하는 때가 많았지만, 철학적인 메시지 담고 있는 스토리(공허와 존재 생명 시간 공간 기억 등등)와 그를 담아낸 아트웍이 정말 현대 미술을 보는 것 같았다.

전체적으로 너무 좋은 게임이었다. 언젠가 시간이 다시 난다면 캠페인 모드의 스토리를 하나하나씩 다 해석해가며 다시 플레이해봐도 좋을 정도로. 아쉬운 점을 하나 꼽자면, 이런 중독적인 액션 게임과 심오한 스토리텔링의 부조화 정도랄까? 나처럼 첫 인상만 보고 다운을 주저하게 되는 사람이 태반일 것 같고, 두 번째로 나처럼 액션 게임의 재미 자체에 치중한 나머지 깊은 스토리 텔링을 무시하고 넘어가는 사람이 태반일 것 같다. 가볍고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이 매커니즘에 넣었더라면 더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