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30일 금요일

잡스(Jobs)


조슈아 마이클 스턴(Joshua Michael Stern)
127분

위대함을 손에 쥐다.


The Social Network를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꼽는 나로서, 이번에 개봉하는 '잡스' 또한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잘 생각해보면 '잡스'에 대한 영상은 꽤 많이 본 편이지만, 그가 애플에서 어떻게 쫒겨 나게 되었는지, 애플이 어떤 행보를 밟고 있었던 회산지는 전혀 모르던 상태라 스토리가 기대되었다. 사실 국내에서의 애플컴퓨터는, 일부 디자인 업계를 제외하고는 '아이폰' 대중화 전까지는 '호환 안되는 불편한 컴퓨터'라는 인식이 아니었던가.

소셜 네트워크 때도 그랬지만, '현실과 굉장히 다를 수 있음'을 인지하고 봤다. 확실히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이야기의 감동을 주기 위해 '미화'된 감이 없지 않았다. 사실 엄밀하게 따지면 이런류의 영화들은 다 '사극'이지 않은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백하게 담아내려 했다면 다큐멘터리가 됐을 것이다.(감명 깊게 본, Story of Mojang이 떠오른다.)

전체적인 '스티브 잡스'라는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사람의 행보를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즐겁게 볼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사후에도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끊없이 영감을 불어 넣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죽어서 까지 혁신을 이뤄내고 있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그가 추구하던 '위대함'을 얻어냈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



버드런드 러셀 저, 송은경 역
270쪽

게으름과 행복, 그리고 사회.


이전에 정말 즐겁게 읽었던 만화(로지코믹스)에서 철학자 러셀의 삶을 엿보았기에, 이 책의 저자인 러셀은 내게 더 친숙하게 느껴졌다. 그의 에세이를 모아 놓은 책의 제목이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라니, 흥미가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이야기를 할지 너무 궁금했다. 내가 기존에 러셀에 대한 이미지를 '논리학자'의 이미지로만 강하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물론 앞서 언급한 로지코믹스의 영향이다.) 그가 썼다는 모순적일 수도 있는 책 제목이 끌릴 수 밖에.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처음엔 조금 실망했었다. 내용자체가 감명 깊지 못하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다. 뭔가 '역설'에서 나온 재미있는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책의 내용은 그것과는 조금 동 떨어진, 정치, 사회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러셀이라는 학자의 중, 노년기의 삶을 조금만 더 넓게 잡고 있었다면 잘못된 기대를 하지 않았을거다.

기대와는 다른 내용이었지만, 내용 자체는 흥미로운 것들이 많았다. '논리학자'가 '사회'에 관심을 갖게 된 '인생의 변화'가 흥미로웠고, 그 논리를 바탕으로 상상하고 지향해야할 사회상을 제시해주는 것이 재밌었다. 

이 책에서 전체적으로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상적 사회주의'에 관한 내용이다. 이 책은 다양한 관점에서 이상적 사회주의를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중요한 부분은 막스의 사회주의와 그를 배경으로 한 다양한 사상들의 한계점을 이야기하면서 제대로 된 '사회주의'란  이런 것이다..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일 것이다. 그는 '논리학자'였던 배경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논거로 이상적인 사회주의가 실현되었을 때 인류가 얼마나 행복해질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다소 아쉬운 것은 후반부에서, 사회적 상황이 맞지 않다면, '일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면 '일자리가 없어도 돈을 줘야한다.'와 같은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려운 제안까지 하고 있다는 것이다. 철학자들은 대개 이상을 추구하는 경향을 갖게 되는 것 같은데, 조금만 자신의 이상에 심취하면 냉철함을 잃고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 읽은 '피로 사회'와 굉장히 많은 유비가 된다. 한 세기의 차이를 두고 각자의 시대 사회 상에 대해 비슷한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원제가 'In Praise of Idleness'다. 책을 다 읽고 제목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다소 역설적이지만, 그가 주장하는 이상적 사회에서 산다면, 우리는 게으를 수 있다. 더 놀고, 더 먹고 마실 수 있다. '게으름'이 그 자체로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게 된 현대 사회지만, 어휘의 뉘앙스가 사회 분위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든다.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

2013년 8월 24일 토요일

숨바꼭질


2013
107분

공포: 구체적이지 않은 실체.


기대와 가장 친한 친구는 실망이라고 했던가. 예상치 못한 호평으로 큰 기대를 갖고 본 영화다. 이제는 경험적으로 기대를 많이 갖고 보면 만족도가 떨어지게 된다는 것을 안다. 이 영화도 기대를 더 적게 가졌다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지만(이런 맥략에선 더 테러 라이브가 참 좋았다.), 기대에는 약간 못 미치는 정도랄까. 기대를 갖게 만든 상황을 탓하고 나면, 꽤 재밌는 영화였다.

스릴러 영화의 특성 상, 상황의 개연성을 중요시하는 관점을 비난하고 싶지 않지만, 이 영화의 강점은 훌륭한 개연성에 있는 것이 아니다. '커다란 헬멧으로 얼굴을 결코 드러내지 않는 범인'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갑자기 나타나'를 '이유 모를 폭력을 가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어디선가 공포의 핵심 요소로, '구체적이지 않은 실체'라고 언급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이 영화는 그 핵심을 잘 파고 들었기 때문에, 어떤 공포 영화보다 무섭게 느껴진다.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가 존재한다. 자신의 강점을 잘 파고 드는 것도 좋은 가치일 수 있고, 다양한 요소를 복합적으로 잘 버무리는 것도 좋은 가치일 수 있다. 이 영화는 전자의 가치에서 훌륭한 영화다.

2013년 8월 12일 월요일

피로사회


한병철 저, 김태환 역
128쪽

긍정성의 부정성.


후배의 추천으로 우연히 읽게 된 이 책은 '한국인 철학자의 독일 베스트 셀러'라는 매우 특이한 꼬리표를 달고 있다. 학부 때 '금속공학'을 전공한 저자의 이력도 특이하다. 그에게 금속 공학이 적성에 맞았든 아니건 간에, 그의 철학이 이슈를 불러왔다는 것 자체가 그가 철학을 공부한 것이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대변해준다.

그의 철학에는 그의 독특한 이력이 살아있다. 인간을 이해하는데에 '질병'의 메커니즘을 유비로 사용할 수 있는 철학자가 또 있을까? 그는 현대 인간의 문제가 전염성 질병에서 경색성 질병으로 바뀌었다고 이야기한다. 외부의 억압, 타자의 인간성 침해와 같은 문제들이 심리적 문제를 야기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내부의,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억압과 착취가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 같은 새로운 문제가 사회적 제도의 발달에 따라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일이 없어졌다는 사실(면역체계가 형성된 것이다.)과 자본주의와 제한없는 자유에 따른 성과주의가 만연해지면서 발생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과거의 유명 철학자들의 이런 문제에 대한 해석을, '패러다임 전환'을 고려하지 못해 정확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자신의 새로운, '긍정성의 부정적 영향'의 패러다임으로 현대 인간 상을 읽어내고 있다.

패러다임이란, "그 시대에, 어떤 것을 설명하는데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참이라 여겨지는 이론"정도로 설명할 수 있다. '패러다임 전환'은 대부분 우리가 명확히 이해하기 힘든 어떤 것에 관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설명이 등장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 책에서의 이해 대상은 '인간 사회와 그 인간 상'이며, '복합적인 요소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인간 사회와 그 인간 상'이 바뀜에 따라, '인간을 이해하는' 패러다임도 끊임없이 바뀔 것이다. '현대인'인 나에게(그리고 수많은 독일 독자들에게도) 무척이나 잘 들어맞는다는 점이 저자의 '현대인 읽기'의 이론이 패러다임 전환을 불러올 것임을 느끼게 한다.

저자는 그의 철학에 따라 현대인의 각종 신경성 질환들, 이를테면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경계성성격장애, 소진증후군, 등의 원인을 '할 수 있다,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하라'는 식의 현대 사회의 경향성에서 읽어 내고 있다. 그리고는, '가끔은 게을러지기도 하고, 잠시 쉬어가는 것이 어떠냐..'라고 묻고 있는 듯 하다. '이상의 나'와 '현실의 나'에 대한 깊은 골을 생각하기 보단, '현실의 나'에 만족하고 '조금씩 나아지는 나'를 그려보는 하루하루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어떨까.

2013년 8월 10일 토요일

더 테러 라이브


2013
97분

상황 연출만으로 심장을 쫄깃쫄깃하게.



'테러'와 '범죄'는 이미 꽤나 진부한 소재가 되어버렸다고 생각한다. 범죄가 '라이브'로 생방송된다는 소재는 약간의 재미있는 비틀기 정도일 것이라 생각했다. 확 끌리진 않았는데, 막연한 궁금증에 끌려서 보게 되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아서 일까. 꽤나 좋았다. 특이한 것은, 영화가 대부분 전화 통화하는 장면이며, 주인공이 전화통화를 하는 스튜디오 이외에는 장소가 거의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영화가 내게 좋은 인상으로 남은 것은, 이러한 한 정된 상황을 만들어 놓고도 특유의 연출로 지루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상황 연출'만으로 관객의 심장을 쫄깃쫄깃하게 만든다. 시사점이 자연스럽게 부각되는 스토리도 '참신하다'라고 평가하기엔 조금 부족한 듯 느껴지지만 합격점을 줄 법하다.

범죄 영화지만 절묘한 범죄 수법과 같은 것도 없다. 범인을 추적하거나 하는 내용도 거의 설명되지 않는다. 이 영화는 범죄영화지만 범죄 영화의 틀에서 많은 것들이 결핍되어있다. 하지만 자신의 장점에 집중함으로써 괜찮은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설국열차와 개봉시기가 겹치는 바람에 빛을 바랜 감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개봉 얼마 안지나 200만을 돌파했다더라. 설국열차 정도의 대작 영화와 함께 개봉되지 않았더라면 영화관 1순위로 충분히 자리잡을 법한 영화라 생각하는데 조금 아쉽다.

영화 뿐만 아니라 어떤 일이든, 그 자체의 내용이 제일 중요하면서도, 상황적인 면까지 제대로 고려했을 때 확실한 성공이 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2013년 8월 6일 화요일

0137 설국열차, Transperceneige



지구에 빙하기가 찾아와 인류가 거의 절멸된 가운데, 무한히 순환하며 달리는 열차와, 그 승객들만이 살아남아 작은 세계를 이룬다..는 설정만으로도 내 흥미를 끌기 충분했다.

내용자체도 무척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열차 안의 세계를 흥미롭게 그려냈다는 점이 좋았다. 독특한 세계관이 어색하지 않게 구성되었을 때, 그 세계가 진짜처럼 느껴지고, 더 재미있게 볼 수 있기 마련이다.

내용자체는 얼마 전에 본, '헝거 게임'과 유사한 면이 무척이나 많았다. 계층 간의 갈등이나, 독특한 세계관과 소재, 상류층에 대한 묘사. 그런 계층화에 불만을 느낀, 빈민층의 주인공...

영화에서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료하다.


'불평등한 이 세계에서, 어떤 것을 지향해야하는가?'


영화 적 구성자체에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개인적으로만 느끼는 것인진 모르겠으나, 왜 '한국 감독'이 만든 '서양인 출연 영화'는 뭔가 어색한 분위기가 감도는걸까? 아무리 '서양 문화권'을 잘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특유의 '센스'는 그곳에서 오랜 기간 살면서 느끼지 않는 한 따라하기 힘든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측의 원작 만화는, 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우연히 서점에서 발견하여(마케팅의 힘이란..) 꽤 고가의 가격에도 불구하고 구입해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SnowPiercer라는 영화의 영어 제목과 유사하게 원작 만화의 제목인 Transperceneige는 Snow를 뜩하는 neige와 관통을 뜻하는 transpercement라는 말의 프랑스 합성어라고 한다.

만화에서는 원작 나름의 맛이 있다. 영화가 '기차 안의 세계'를 좀 더 '판타지적'이고 완전한 체계로 묘사했다면, 만화는 좀 더 '불안정한' 세계로 묘사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만화 속에서는 알고보니 '유일한 기차'도 아니고 정차하기도 한다.

주고자 하는 메시지 자체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영화의 내용이 더 매끄럽게 다듬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만화에는 종교, 정치와 같은 다양한 '사회문제'들 설국열차 세계 속에 다 담으려고 하다보니 조금은 난잡한 감이 없지 않다.


수 많은 사람들의 무한한 지성 속에서 피어나는, 이야기의 상상력에는 한계가 없구나..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재미있는 세계관 속에서 현실을 투영하여 읽어 내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