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철 저, 김태환 역
128쪽
긍정성의 부정성.
후배의 추천으로 우연히 읽게 된 이 책은 '한국인 철학자의 독일 베스트 셀러'라는 매우 특이한 꼬리표를 달고 있다. 학부 때 '금속공학'을 전공한 저자의 이력도 특이하다. 그에게 금속 공학이 적성에 맞았든 아니건 간에, 그의 철학이 이슈를 불러왔다는 것 자체가 그가 철학을 공부한 것이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대변해준다.
그의 철학에는 그의 독특한 이력이 살아있다. 인간을 이해하는데에 '질병'의 메커니즘을 유비로 사용할 수 있는 철학자가 또 있을까? 그는 현대 인간의 문제가 전염성 질병에서 경색성 질병으로 바뀌었다고 이야기한다. 외부의 억압, 타자의 인간성 침해와 같은 문제들이 심리적 문제를 야기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내부의,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억압과 착취가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 같은 새로운 문제가 사회적 제도의 발달에 따라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일이 없어졌다는 사실(면역체계가 형성된 것이다.)과 자본주의와 제한없는 자유에 따른 성과주의가 만연해지면서 발생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과거의 유명 철학자들의 이런 문제에 대한 해석을, '패러다임 전환'을 고려하지 못해 정확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자신의 새로운, '긍정성의 부정적 영향'의 패러다임으로 현대 인간 상을 읽어내고 있다.
패러다임이란, "그 시대에, 어떤 것을 설명하는데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참이라 여겨지는 이론"정도로 설명할 수 있다. '패러다임 전환'은 대부분 우리가 명확히 이해하기 힘든 어떤 것에 관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설명이 등장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 책에서의 이해 대상은 '인간 사회와 그 인간 상'이며, '복합적인 요소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인간 사회와 그 인간 상'이 바뀜에 따라, '인간을 이해하는' 패러다임도 끊임없이 바뀔 것이다. '현대인'인 나에게(그리고 수많은 독일 독자들에게도) 무척이나 잘 들어맞는다는 점이 저자의 '현대인 읽기'의 이론이 패러다임 전환을 불러올 것임을 느끼게 한다.
저자는 그의 철학에 따라 현대인의 각종 신경성 질환들, 이를테면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경계성성격장애, 소진증후군, 등의 원인을 '할 수 있다,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하라'는 식의 현대 사회의 경향성에서 읽어 내고 있다. 그리고는, '가끔은 게을러지기도 하고, 잠시 쉬어가는 것이 어떠냐..'라고 묻고 있는 듯 하다. '이상의 나'와 '현실의 나'에 대한 깊은 골을 생각하기 보단, '현실의 나'에 만족하고 '조금씩 나아지는 나'를 그려보는 하루하루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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