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25일 월요일

0099 남자사용설명서


나른한 일요일, 특별한 약속도 없던 차에 VOD메뉴에 이 영화가 나온 것을 봤다. 사실 별로 관심도 없었고, 뻔해보이는 탓에 절대 선택하지 않을 영화였지만, 유일하게 이 영화를 강추하는 친구가 하나 있어서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어 '머리 비우고 보자'라는 생각에 틀었다.

리뷰를 쓰는 지금에 와서는 생각보다 할 말이 많다. 첫 번째, 위의 사진을 보면 무척 여주인공이 무척 자극적인 포즈로 앉아있는데, 사실 이 영화는 선정성은 눈꼽만큼 찾아보기 어렵다. 포스터만 보면 '몽정기'나 '색즉시공'시리즈와 동급일 것 같지만, 오히려 몇 가지 특징만 빼면 '로멘틱 코미디'의 정석이라 불릴만큼 선정성과는 거리가 멀다.

영화의 홍보 포스터를 통해 그 영화에 대한 대력적인 내용과 기대가 형성되는 점을 생각해보면, 포스터 제작이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여주인공인 이시영씨는 영화 내내 저런 헤어스타일과 복장을 한 장면이 하나도 없다. 비교적 빨리 VOD로 나왔다는 것은 그만큼 흥행에 실패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데, 사실 내용이 생각보다 재밌었기에 더욱 아쉬움이 든다.

앞에서 언급한 몇 가지 특징은 B급 연출이라는 점이다. 연출이 안 좋다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B급처럼 보이게 만드는 연출있지 않은가. (이런 영화의 대표작으로는 Knocking on heaven's door가 있겠다.)  개인적으로 B급 연출 영화가 좋게 평가받으려면 내용 자체가 훌륭함을 전제로 해야한다. B급 연출로 웃음을 주면서, 나중에 내용자체의 훌륭함으로 반전 감동을 주는 것,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B급 연출 영화가 아닐까?

하지만 영화가 B급 연출이 되는 큰 이유 중에 하나는 실제로 B급 연출을 해야만 하는 '저예산'영화라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어설프게 저예산을 가지고 고퀄을 뽑아 내려는 시도를 통해 '진퉁 B급 영화'가 되기 보단 차라리 '일부러 찍은 B급이야'로 포장하는 것이 훨씬 쿨해보일테니까.

앞에서 언급한 두 가지 측면에서 이 영화는 '좋은 B급 영화의 조건'을 어느 정도 만족시켰다는 생각이 든다. 첫 장면에서 받은 실망은 영화가 진행할 수록 '생각보다 괜찮네..'라는 마음으로 돌아서게 만들었다.

마치기 전에, 이 영화에서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을 찍어서 보여주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음을 언급하고 싶다. 영화는 실제로 '남자사용설명서'라는 비디오 테잎 그 자체이기도 하며, 극 중 인물이 '남자 사용설명서라는 테잎'을 보기도 하고, 극 중 인물이 '남자 사용설명서'의 "실제 사례 편"이기도 한, 현실영화 속, 영화 속의 비디오의 경계를 넘나드는 차원이동은 참 인상 깊었다.

가볍게 웃고 즐길 수 있는, '색다른 로멘틱 코메디'를 원한다면, 추천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