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12일 금요일
0131 그리스인 조르바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어보려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의 추천이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라는 평이 특히나 날 이끌리게 했다. 꽤 두꺼운 분량에 선뜻 읽기 시작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열린책들' iPad 앱에서 프로모션으로 그리스인 조르바를 무료로 배포하는 것을 보고 다운을 받게 되었다. iPad로 자투리 시간이 생길 때마다 읽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읽는 내내, 나는 이 이야기의 화자이자 실제 작가인 주인공과 매우 닮아 있었음을 알게 되었고, 그과 나 자신을 동일시하며 이야기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주인공은 독서를 좋아하고, 책 속에 무언가 깨달음이 있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나도 막연히 그렇게 믿으며 그런 삶을 살고 있었다. 책을 읽어야만 인간의 지평이 넓어지고, 지혜로워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것이 '더 좋은 삶'을 살게 해줄 거라고 믿었다.
조르바는 이러한 주인공의 삶의 태로를 대놓고 반박한다. 인생을 살고 있지 않다고, 책 속에는 인생이 없다며 주인공에게 '삶'을 살라고 충고한다. 조르바의 삶은, 주인공이 옆에서 지켜보며 아주 상세하게 묘사하여 보여준다. 책 말미에도 나오는 것처럼, 그는 조르바의 삶을 생생하게 재현해내는 것을 하나의 사명으로 여긴 것이다.
'카르페디엠'이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뜻의 라틴어로 꽤나 유명한 인용구이다. 그리고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봤을지 모른다.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고? 맨날 놀기만 해도 된다는 건가? 이건 좀 모순적인 것 같은데...'
조르바의 삶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카르페디엠'이라는 말은 전혀 모순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매순간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며, 그 순간 이외의 것에는 모두 신경을 꺼버린다. 내 생각에 그러한 삶의 태도 이면에는 '우리가 영원할 수 없음'을받아들이는 과정이 있었을 것 같다. 조르바 역시 죽음에 대해 고뇌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그에게 죽음이란 극복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삶의 한 부분'일 뿐이었다.
많은 '행복론'이 현재에 충실하라고 부르짖는다. 그것이 탁상공론처럼 느껴지고, 뜬구름 잡는 것 같다면 '그리스인 조르바'를 꼭 읽어보길 바란다. 그의 삶에서 행복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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