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4일 목요일

0043 괴델, 에셔, 바흐 : 영원한 황금 노끈(GEB)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예전에 '해커와 화가'라는, 프로그래머를 위한 에세이에서 잠깐 언급이 나왔을 때 였다. 정확한 맥락은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 저자가 '꼭 읽어보라'고 권했던 책이었다. 메모해놓고 나중에 찾아봐야지, 하다가 메모한 것을 잃어 버렸고 책의 제목이 가물가물해져서(괴델..이 들어갔던 거 같은데 뭐였더라..? 이랬다..) 그렇게 이 책을 잊고 살았다.

유명한 과학 잡지에서 현대 과학을 바꾼 명저 10선을 뽑기 위한 25권의 후보 목록을 어떤 블로그에서 보게 되었는데, 그 목록 중에 있는 이 제목을 보고는 '아 그때 그 책이었지!'라고 단박에  떠올랐고, 바로 서점에서 책을 찾아 보았다. 79년에 나온 책이고, 번역서는 97년에 나왔다. 책 내용이 워낙 방대해서, (역서로 읽었는데, 500페이지 가랑의 책 2권이다. 직접 읽은 책은 보통 표지 사진을 찍어서 올리는데, 깜빡하고 도서관에 바로 반납해버려 본의 아니게 영문판의 표지를 스크랩했다) 영어로 읽다간 반년은 걸릴거 같다는 생각에 일단 역서를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너무 서두가 길었다만, 이 책은 그 동안의 리뷰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인 '컨텐츠'고 내 식견을 정말 더 넓게 확장시켜주었으며, 내 인생 최고의 책으로 손꼽히기에 손색이 없기 때문에,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수학자인 괴델, 화가인 에셔, 음악가인 바흐. 저자는 이들 사이의 연관성을 찾아 낸다. 황당하기 그지없지만 이것은 저자의 인용의 '3대 축'일 뿐이며, 책의 내용에는 뇌 과학, 분자생물학이나 인공지능, 프로그래밍 언어론, 문학들이 다양하게 어우러져 저자의 견지를 뒷받침하고 있다.

상상이 잘 안되겠지만 그렇다. 이 사람, 천재다. 그냥 이 말 밖에 안 나올 정도로 대단하다. 다양한 분야에 걸쳐 '전문가급 지식'을 갖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저자의 우월함'을 자랑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때문에 책을 읽는 후반부에서는 비슷한 논지에 대한 예를 너무 많이 들어주어 모두 따라가기에 너무 지쳐 훑어보는 식으로 조금씩 스킵하기도 했다.)

저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내 방식대로 풀이하자면 이렇다:
"어떤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것보다 고차원적인 상태에서 가능하다."

"고차원적인 상태"라는 말을 풀이하자면, 그 대상이 속해 있는 체계를 포함하면서, 그 체계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체계"라는 말을 풀이하자면, 어떤 것들이 일정한 규칙에 의해 모여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예를 들자면, y=x 라는 방정식의 그래프를 떠올려보면, 누구나 xy평면에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직선은 2차원 평면 위에 존재한다. 이것보다 고차원 상태라 함은, z축을 추가한 3차원의 시점이다.

무슨 당연한 소리인가 싶겠지만, 이것은 우리가 공간 상의 3차원 존재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우리가 2차원의 존재라고 생각해보자. 직선의 형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좀 더 상세한 예를 들어보자면, '컴퓨터 모니터에 그려진 자동차'를 떠올려보자. 모니터의 구조를 간략히 설명하자면 모니터는 픽셀들로 이미지들을 표현한다. 해상도라고 부르는 (1024x768같은) 것이 바로 '픽셀'이라 불리우는 점들의 수이다. 가로로 1024개, 세로로 768개의 점들이 모여 화면을 표현한다는 거다.

컴퓨터의 내부까지 들어가 보면 컴퓨터는 모니터에 각각의 '픽셀'을 무슨색으로 표현할지에 대해 전자 신호를 넘겨주고, 모니터는 이 전자신호를 받아와 미리 정해 놓은 '신호에 맞는 빛깔'을 표현한다.

모니터의 입장에서는, 각각의 픽셀을 어떤 색으로 표현할지는 알지만, 그 색깔들의 조합이 '자동차'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면 그보다 고차원적인 존재인 우리는 모니터가 각각의 픽셀들을 표현함을 앎과 동시에 픽셀들이 '자동차'라는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음을 안다.

부족한 이해력으로 이 명저를 쉽게 풀어 설명하자니 좀 복잡해지는 것 같다. 사실 저자는 이 주장을 설명하기 위해 '체계', '재귀성'이라는 개념에 대해 깊이 있는 설명을 한다. 저자가 이와 같은 결론을 내리기 위한 핵심이다. 여기에서도 간략히 언급하자면 이렇다.

모순적인 문장은 대부분 재귀적인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가장 흔한 예는 이것이다.

"이 문장은 거짓입니다."

라는 문장이 있을 때, 저 문장은 참이기도 하고 거짓이기도 하다. 애매해 진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도 완전히 이해했다고 자신있게 이야기하긴 힘들지만 간단히 설명하자면, 비슷한 맥락에서 '수학 체계'가 위와 같은 모순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특정 명제들에 '참이나 거짓을 결정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저자 다양한 맥락이서 이러한 모순이 생기는 이유를 짚어 본다. 그렇지만 항상 여러 체계들이 다양한 고리를 맺으며 서로를 재귀적으로 참조하여 모순점이 생기게 한다.  필연적으로 완전한 체계가 있을 수 없다고 한다. 현재로써 우리는 진리를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체계'보다 고차원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언어'를 비롯한 다양한 체계를 통해 생각하고 말하고 의사소통하는 이상 그러하다는 것이다. '참선'을 하고 '깨달음'을 얻는 다는 것이 이러한 체계 넘어서의 '체계'에 도다르는 길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신비한 '도가철학'과 같은 것까지 함께 끌어 안는다.

이 책과 함께 씨름한 것이 4주 가까이 된다. 몇 일 게을러 진 것이 있기도 하고, 저자의 내용을 따라가려면 깊은 숙고를 해야하거나 몇 번씩 다시 읽어보기도 해야하는 경우도 많았으며, 책 자체의 내용도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어려웠다. 내 자신이 '완결성'에 얼마나 집착하는 지 깨달을 수도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후반부에 점점 어려워지며 비슷한 맥락의 예를 들어줄 때에는 이 책을 제대로 100%이해하려면 현재에서 1-2달은 더 씨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었다. 숙고해본 결과 맥락만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현명한 행동이라 생각했다. 이미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그를 통해 얻은 새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행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산다는 것, 공부한다는 것, 뭔가를 성취하고 싶은 욕구에 대해서 필요하다. '왜?'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은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계속되어야만 할 것이다.

GEB라는 산이 얼마나 험난한지도 모르고 무작정 덤벼 들었다. 산을 샅샅히 돌아다니며 아름다움을 100% 만끽하진 못했지만 정상까진 도달한 것 같다. 언젠가, 여유가 있고, 영어도 좀 더 능숙해지고 새로움을 얻고 싶게 될 그 때, 영문판을 꼭 다시 읽어야겠다.

용기와 이 리뷰에서 흥미가 생겼다면, 꼭 도전해보시길. 험난한 만큼 큰 배움을 얻게 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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